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2월13일] 알 비루니


빛은 동방에서 왔다. 동방의 문화가 없었다면 근대문명의 발달이 더뎠을지도 모른다. 유럽이 종교 이데올로기에 빠져 암흑기를 보낼 때 중동에서는 학문의 꽃이 피었다. 알 비루니(Al-Biruni)는 11세기 이슬람을 대표하는 학자. 수학과 천문학ㆍ철학ㆍ의학ㆍ지리학 분야에서 120여권의 저서를 남겼다. 연산을 뜻하는 알고리듬(algorithm)의 어원이 된 알 코와리즈미, 시인으로도 유명한 오마르 하이얌과 더불어 3대 이슬람 수학자로 꼽힌다. 973년 페르시아(이란) 호라즘 제국에서 태어난 비루니는 전공격인 물리학과 수학은 물론 아랍어와 페르시아어ㆍ그리스어ㆍ히브리어에도 통달했다. 22세에 제작한 지도가 18세기까지 지도제작법의 기본으로 쓰일 만큼 측량과 기하학에도 밝았다. 27세 때는 삼각함수를 이용해 측정한 지구둘레가 4만1,550㎞라는 학설도 내놓았다. 현재 기술로 잰 4만120㎞와 비슷한 수준이다. 최대 업적은 고대 그리스와 이슬람 학문에 인도를 융합시켰다는 점. 44세부터 57세에 이르기까지 인도에 머물며 고대 힌두수학을 연구해 인도숫자를 아라비아숫자로 정착시키고 시그마(Σ) 공식을 만들었다. 코페르니쿠스 지동설의 원류가 비루니라는 주장도 있다. 학문적 업적을 존중한 황실에서 은화상자를 가득 단 코끼리를 주자 바로 돌려줄 만큼 청렴했던 비루니는 공직 제의도 거절하고 1048년 12월13일 75세로 사망할 때까지 학업만을 낙으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비루니의 업적은 상업에 일찍 눈을 뜬 이탈리아를 거쳐 온 유럽에 퍼졌다. 확률 이론과 리스크 관리, 계량경제학의 기본인 수학의 원산지도 인도와 아랍이다. 거꾸로 아랍은 교조주의에 빠지며 쇠락의 길을 걸었다. 무덤 속의 비루니가 통탄할 일이지만 역사는 돌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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