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금융산업의 전략 모델

윤종규<김&장 법률사무소 상임고문ㆍ성대 초빙교수>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 한다. 정치보다 훨씬 극심한 경쟁이 일상화돼 있는 기업경영은 더욱 기민하게 변신하고 적응하는 생물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기업경영에는 영구불변의 패러다임도 조직구조도 없다. 사업전략의 예를 들면 지난 70ㆍ80년대의 화두는 다각화였다. 재무관리의 포트폴리오 이론을 원용해 사업을 다각화하는 것이 경기변동 등의 영향으로 인한 진폭을 줄이고 안정적 수익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90년대에 들어서는 선택과 집중으로 흐름이 바뀐다. 강점이 있는 부분을 특화하고 전문화해 그 분야에 세계 일등이 돼야 성공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세계 일류기업인 GE나 한국 간판기업인 삼성은 다각화의 표본인가 혹은 선택과 집중의 모델인가. 사회과학에는 절대진리가 없으니 여전히 두 전략 중 어느 하나가 우위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금융업의 경우도 다각화 전략이 대형화, 정보기술화 및 세계화와 함께 큰 흐름을 이끌어왔다. 금융지주회사의 우산 아래 은행ㆍ증권ㆍ보험ㆍ카드 등을 아우르는 유니버설뱅킹이 다각화 전략의 전형적인 예이다. 금융업 경쟁력의 핵심은 고객기반을 누가 더 넓게 가지고(너비) 각 고객에게 더 많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며(깊이), 지속적으로 고객의 신뢰를 얻느냐에 달려 있다. 이런 관점에서 금융지주회사를 통한 유니버설뱅킹 모델은 경쟁력을 높이는 좋은 수단으로 인식돼왔다. 다시 말해 통합된 고객기반에 교차 판매를 늘려서 고객당 수익을 높이고 온스톱서비스로 고객만족을 높여 경쟁력과 기업가치를 향상시키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몇년 전부터 이러한 금융지주회사를 통한 유니버설뱅킹 모델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돼왔다. 그런데 이 같은 모델의 선두주자이자 대표적 성공사례로 여겨져왔던 시티그룹이 1월 말 생명보험과 연금사업 부분을 메트라이프에 매각하자 이러한 회의론이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시티그룹은 손해보험 부분을 이미 2002년에 분사시킨 바 있어 성공적인 해외투자를 자랑하는 멕시코의 바나멕스의 보험 부문이 이번 매각에서 제외됐다 하더라도 보험업에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회의론은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우선 지주회사그룹 내의 보험사나 증권사는 그룹 내 판매 채널에서 소화해줄 것으로 믿는 타성이 있어 업계 최고의 금융상품을 자가제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룹 내 모든 고객에게(유통)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제조) 팔아 고객 점유력을 높이자는 제조와 유통의 환상적인 조합이 꿈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마치 신혼부부가 부부의 예쁜 곳만을 골라 닮은 아기가 나오기를 바라지만 미운 곳만을 빼닮은 모습에 실망하는 경우와 같다고나 할까. 따라서 고객의 이익보다는 자사이익을 앞세워 무리하게 자기상품을 파는 이해의 충돌이 심각하고 이는 고객신뢰의 상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둘째, 모든 것을 주력기업인 은행의 시각으로 보게 돼 보험 등의 업종 특성에 맞는 리스크 관리와 경영전략의 실행 어렵다는 것이다. 셋째, 최고경영자 중 은행은 물론이고 증권이나 보험 등 다른 분야까지 밝은 사람이 드물어 이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끌어가는 경영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회의론에 터 잡아 구미에서는 금융지주회사를 통한 유니버설뱅킹 모델과 함께 자사의 강점에 따라 유통 중심으로 가거나 제조나 정보기술에 특화하는 등 금융회사간의 다양한 전략적 차별화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양상이 이미 싹트고 있고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금융정책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주고 중립적 입장을 취해 금융회사가 경제적 판단에 따라 자신에 맞는 모델이나 전략을 선택해 차별화가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금융지주회사 소속사간에만 정보공유를 허용하는 등의 차별적인 금융구조정책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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