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노동시장 10년만의 대변혁-노사상생 해법 찾아라] <상> 16시간의 역설

근로시간 줄여도 일자리 안늘고 생산성·임금만 쪼그라들어

전문가들 "근로시간 단축=일자리 창출은 착각"

통상임금 범위 확대까지 겹쳐 신규 채용 걸림돌

노사정 추가 연장근로 허용 등 대안 마련 나서야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에서 한 근로자가 완성된 차량의 내부를 점검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추진 중인 근로시간 단축이 이뤄질 경우 장시간근로가 많은 제조업종과 중소기업들이 생산물량 차질에 시달리고 '임금 삭감 없는 근로 단축' 논쟁으로 심각한 노사갈등도 우려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


"오는 2017년까지 고용률 70%를 달성하고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 4만달러 시대로 가는 초석을 다져놓겠습니다."

지난 2월 말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맞아 '경제혁신3개년계획'을 발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박 대통령이 이날 강조한 '고용률 70% 달성'은 현 정부의 최대 국정과제 중 하나다.


정부가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핵심 방안으로 밀고 있는 것이 바로 근로시간 단축이다. 현재 주 68시간(법정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휴일근로 16시간)인 근로시간을 52시간(법정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16시간 줄여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16시간을 줄여도 일자리는 늘지 않고 오히려 기존 근로자들의 소득만 줄어들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여기에 통상임금 범위까지 확대되면 기업들의 경영환경은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근로시간 줄여도 고용·실업률은 '제자리'=근로시간과 고용률·실업률은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를 가질까. 주당 40시간 근무제(주5일제)가 도입된 지난 2004년과 2013년을 비교해보면 별로 큰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다. 2004년 당시 59.8%였던 고용률은 2013년 59.5%로 오히려 0.3%포인트 낮아졌고 실업률 역시 2004년 이후 3.1~3.7% 수준에서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같이 고용률과 실업률이 정체하는 현상은 법정근로시간을 주당 48시간에서 44시간으로 줄인 1990년 이후에도 마찬가지로 발생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근로시간 조절은 기업들이 경기 변동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인데 근로시간을 급격히 줄일 경우 이는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생산성이 높아지지 않는데 신규채용으로 인건비 부담을 추가로 떠안을 기업이 어디 있겠느냐"며 "근로시간 단축이 곧바로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거라는 생각은 순진한 착각"이라고 단언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보고서를 통해 "근로시간 단축과 실업률 감소 사이에는 큰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며 "임금 삭감 없는 근로시간 단축은 비용과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중장기적으로 일자리 창출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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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 확대도 신규채용 걸림돌=통상임금 범위 확대 역시 기업들이 신규채용을 꺼리게 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대법원 판결을 바탕으로 지난 1월 '정기성·일률성·고정성 요건을 갖춘 정기 상여금만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가이드라인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데다 상반기 중 통상임금 관련 입법이 물 건너가면서 각 사업장에서 노사는 개별적으로 임단협을 통해 통상임금 범위를 정해야 한다.

현재 노동계는 정부 가이드라인과 달리 '퇴직자 지급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통상임금 범위 확대만으로 기업들의 일시부담금은 13조7,509억원에 달할 것으로 경영계는 추산하고 있다.

김판중 한국경영자총협회 경제조사본부장은 "통상임금 확대와 근로시간 단축이 한꺼번에 이뤄지면 인건비 폭탄을 떠안은 기업들은 신규채용부터 급격히 줄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동계 "임금 보전"…재계 "생산성 높여야"=이처럼 근로시간 단축과 통상임금 확대가 고용시장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들 이슈가 노사갈등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향후 근로시간이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고 기업의 임금 보전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장시간근로가 만연한 일부 업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임금은 최고 25%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근로자는 법정시간대로 일하되 임금은 보전하라고 요구하게 될 게 자명하다.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은 "임금 감소는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근로자 삶의 질 향상이라는 목표에 위배된다"며 "설비투자와 인력 충원으로 생산성을 높이라는 것이 근로시간 단축의 취지"라고 말했다.

반면 기업들은 "신규채용과 시설투자를 위한 재원이 부족하다"며 "생산성 향상이 우선 전제돼야 근무시간을 줄이고도 같은 임금을 줄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이 같은 경영계와 노동계의 입장 차이는 극심한 노사갈등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사정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논의해 합의점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되더라도 산업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일본처럼 8시간의 추가 연장근로 허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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