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4일 발표한 새 경제팀 정책방향의 큰 줄거리는 41조원 이상의 국가 재정 및 금융지원액을 향후 5개월 내에 풀겠다는 것이다. 마치 미국이나 일본처럼 정부가 단기간에 끌어모을 수 있는 가용자금을 총동원해 연말까지 단기간 내에 경기부양 효과를 내겠다는 정책의도가 담겨 있다.
정부가 재정출혈을 일부 감수하고서라도 이처럼 대규모 돈 보따리를 푸는 데는 자칫 때를 놓치면 우리 경제가 과거 일본식 장기불황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절박감이 녹아있다. 가급적이면 추가경정예산을 별도로 편성해 거시경제의 새 판을 짜면 좋았겠지만 정부는 일단 '기금 증액(11조7,000억원)+금융지원(29조원)+세제감면(수천억 원 이상 혜택 예상)'의 재정보강 패키지를 선택했다. 이는 체감과 달리 지표상으로는 경기침체 등 법적인 추경 편성요건 충족 여부를 자신하기 어렵고 그마저도 국회에서 늑장 처리될 수 있어 자칫 경기 대응의 적기를 놓칠 수 있기 때문에 나온 차선책이다.
정부는 이 같은 확장적 거시정책을 최소한 내년에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4일 새 경제 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확실한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거시경제 정책을 확장적으로 운용하겠다"고 못 박기도 했다. 대규모 재정투입 효과가 내년에도 가시화하지 않으면 그 이후에도 거의 무제한으로 돈을 풀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새 경제팀의 3대 정책기조로 △과감한 정책대응 △직접적 방안 강구 △가시적 성과 도출로 압축되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는 양적완화를 하되 서민들이 경기부양 효과를 체감할 수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자금을 집중적으로 투입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주택시장과 자영업자, 중소ㆍ수출 기업 등이 주된 수혜 대상이다.
실제로 11조7,000억원의 기금 증액 중 6조원은 국민주택기금 몫인데 이 돈은 대개 서민들의 주택구입 자금, 공공임대주택용 융자, 임대주택리츠 출자 등에 쓰인다. 기금 증액분의 나머지는 중소기업 창업 및 진흥 기금(4,000억원), 무역ㆍ기술ㆍ신용에 대한 보증ㆍ보험(2조원), 농수산 및 전략산업 지원(1,400억원) 등에 안배된다.
총 29조원 규모의 금융지원액도 주로 수출 및 중소기업을 위해 사용된다. 낱낱이 살펴보면 산업ㆍ기업ㆍ수출입은행 등을 통한 기업 정책금융 확대(10조원), 외국환평형기금을 통한 외화대출지원 확대(50억달러 규모), 안전투자펀드 조성(5조원), 2차 설비투자펀드 조성(3조원), 시장안정용 채권담보부채권(P-CBO) 추가 발행(2조원), 선박은행 조성(1조원) 등이다.
다만 이처럼 기금·정책금융자금 증액을 통한 재정확대는 추경 등에 비해 효과 면에서 제약이 따른다. 기금이나 정책금융자금의 특성상 사용용도가 엄격히 제한돼 있어 자금이 탄력적으로 실수요층에 지원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게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정책금융자금은 지원요건이 까다로운 경우가 많아 정작 신용도가 낮거나 담보력이 부족한 서민·중소기업들에는 그림의 떡이 될 수 있고 오히려 눈먼 돈(정책자금)을 따가는 데 도통한 '선수'들에게 헛돈이 지원될 우려가 적지 않다. 따라서 자금편성 못지않게 실제 재정·금융 전달과정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부당한 수혜자는 철저히 응징하는 노력도 병행돼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