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골퍼와 캐디의 '탓'


높고 푸른 가을 하늘에 솜사탕 같은 흰 구름이 평화롭게 떠 있습니다. 골프장 주변에서는 꽃보다 화려한 단풍이 물들고 가느다란 가지에 위태롭게 매달린 커다란 모과가 노랗게 익어갑니다. 그러나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잔디는 아직도 푸름을 유지하며 골퍼들의 마음을 싱그럽게 합니다. 가을날의 골프장은 아름다운 풍경화 그 자체입니다. 더불어 골퍼들의 마음도 하얀 공이 푸른 하늘에 포물선을 그리며 시원하게 날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한껏 부풀어 오릅니다.


그러나 의욕과는 달리 첫 티샷부터 슬라이스가 나면서 공은 계곡으로 사라집니다. 공이 사라진 계곡을 내려다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각오를 다집니다. 토핑과 더프, 그리고 오비가 반복되면서 화가 나던 마음은 민망함으로 변합니다. 어쩌다 공이 홀 옆에 떨어져 버디를 기대했는데 퍼터를 떠난 무심한 공은 홀을 훌쩍 지나가 보기가 되고 맙니다. 자책과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TV에서나 볼 수 있는 세계적인 프로골퍼들도 어이없는 실수로 우승을 놓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골프는 아무래도 실수의 스포츠인 것 같습니다.

관련기사



또 다른 골프의 특징은 다른 스포츠에서는 볼 수 없는 도우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도우미인 캐디는 골퍼가 필요로 하는 채를 들고 골프장을 종횡으로 누빕니다. 거리와 방향, 해저드와 오비라인 유무, 바람의 방향과 세기, 그린 평면의 높낮이와 굴곡, 그린의 속도 등 상황정보도 골퍼에게 제공합니다. 골퍼가 친 공이 어디로 가는지 잘 보고 산비탈이나 계곡으로 날아간 공을 찾아줘야 합니다. 4명의 골퍼를 돌봐야 하는 캐디는 정신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것들을 모두 잘하지 못하면 골퍼는 '캐디 탓'을 하게 됩니다. 골퍼끼리 캐디의 흉을 보는 것은 애교 수준의 '탓'입니다. 가끔은 '탓' 문제가 확대돼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합니다. 최악의 사태는 동반하던 캐디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나 캐디 '탓'만 하는 것은 캐디에게 억울한 면도 있습니다. 골퍼는 캐디가 제공한 정보나 권유를 그대로 채택할지를 자기 스스로 결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캐디가 준 정보를 그대로 채택했다고 해서 책임이 면제될 수는 없습니다.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캐디의 탓'도 있지만 채택하기로 결정한 '골퍼의 탓'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친구 간에, 직장에서 그리고 사회와 정치의 장에서 '네가 잘 못한 탓' 공방을 자주 봅니다.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네가 잘 못한 탓'만 하는 것까지 찬성하기는 어렵습니다. 더구나 나이 어린 캐디 탓을 하며 분위기를 망치는 골퍼와 라운딩을 하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자책 '탓'으로 실의에 빠진 골퍼와 라운딩을 하는 것도 즐거운 일은 아닙니다. 실수가 조금 많은 골퍼도 괜찮고 정보가 조금씩 틀리는 캐디도 상관없습니다. 이번 가을에는 '탓' 공방에서 벗어나 나의 실수와 캐디의 잘못을 너그럽게 봐주는 동반자와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