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2월21일] 제스로 툴 & 농업혁명


제스로 툴(Jethro Tull). 현대 농업의 창시자다. 산업혁명도 그가 불을 댕긴 농업혁신 덕분이라는 평가도 받는 인물이다. 그의 이름을 딴 유명 록그룹도 있다. 최대 업적은 파종기(seed drill) 발명. 1672년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했으나 몸이 약해 시골에서 요양하던 중 농업에 눈을 돌려 파종기를 개발해냈다. 툴이 1701년 발명한 파종기의 구조는 간단했다. 말과 쟁기ㆍ파종관 정도였지만 파종기는 혁신을 가져왔다. 우선 씨앗의 발아 확률이 높아졌다. 말이 끄는 수레에 달린 쟁기가 땅을 깊게 파면 파종관에서 씨앗이 떨어지고 흙까지 덮어줘 새의 먹이가 되거나 태양 빛에 말라 비틀어지는 씨앗이 거의 없어졌다. 일정한 간격으로 판 고랑에 씨앗이 심겨 추수하기도 쉬워졌다. 영국의 농업생산량도 덩달아 뛰었다. 툴의 파종기는 ‘엔클로저’의 파급을 막았다. 섬유산업의 발달로 농지를 목초지로 바꾸는 통에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말까지 나오게 만들었던 목축지 확장이 파종기의 등장으로 크게 줄었다. 농지의 생산성이 높아진 덕이다. 툴이 세상을 하직(1741년 2월21일)할 무렵에는 타운센트의 근대식 윤작법(밀ㆍ순무ㆍ보리나 밀ㆍ콩을 번갈아 심어 토지의 비옥성을 유지하는 농법)까지 확산돼 영국의 농업은 급증하는 도시 노동자들을 먹여 살리고 한때 농산물 수출국의 반열에까지 오르기도 했다. 툴이 주도한 농업혁신이 없었다면 산업혁명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툴의 혁신이 만개한 곳은 미국. 파종기를 개량한 제품이 잇따라 나오며 세계 1위의 농업국가로 올라섰다. 영국과 미국이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바탕에는 농업 경쟁력이라는 무기가 깔렸던 셈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농업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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