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리뷰] 연극 '월남 스키부대'

심오한 메시지 없지만… 허풍쟁이 참전용사의 아픔 유쾌하게 풀어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는 베트남 참전용사. 아들은 대책 없는 백수이고, 며느리는 "아버님 때문에 못 살겠다"며 요양원을 운운한다. 상황만 놓고 보면 짠한 주인공 김노인. 그러나 이 위대한 월남 영웅이 쏟아내는 허풍과 농담은 관객이 애처로움을 느낄 틈도 없이 웃음을 분사한다. "내가 월남 산꼭대기에서 스키 타고 내려오며 새참 먹고 군장도 정리했지."

김 노인은 자기 눈에만 보이는 후임 김일병과 수시로 유쾌했던 영웅담과 추억을 그려낸다. 월남 파병 두 달째인 군인과 참전 후유증에 시달리는 초라한 노인, 이 두 개의 인생을 동시에 살고 있는 사람이 바로 김노인이다. 지뢰를 심는다며 집 곳곳에 똥을 숨기고 보이지도 않는 대상을 향해 헛소리하는, 긁어도 긁어도 사라지지 않는 고엽제에 물든 몸뚱어리는 녹이 잔뜩 슨 그의 방문과 겹쳐진다.


"너 이제 우리 집 오지 마. 너만 왔다 가면 불화가 생겨." 김노인은 김일병에게 부탁하며 묻는다. "그때 그 일 때문에 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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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중 누구도 듣고 싶어 하지 않던 김일병의 실체와 의문의 '그때 그 일'은 무엇일까. 김노인 집에 허술한 좀도둑이 들며 먼지 앉은 봉인은 해제된다.

작품은 욕심을 버리고 노선을 확실하게 가져간다. 한없이 우울할 수 있는 소재를 웃음으로 풀어내지만, 쥐어짜는 연기나 과장은 없다. 스토리 전개상 신파가 불가피한 부분은 과감한 생략으로 '양다리'를 피해갔다. 이한위, 서현철, 심원철의 능청스러운 김노인 연기도 비교적 편안하게 이야기를 이끈다.

"특별한 메시지는 없다. 아픔이 있을수록 허풍을 떠는 이들을 통해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는데 여러분은 어떠냐'라고 묻고 싶었을 뿐이다." 연출·작가·주연인 심원철의 말처럼 심오한 철학이나 메시지에 대한 욕심은 보이지 않는다. 부담 없이 허풍을 즐기는 사이 담백한 감동이 잔향처럼 남는 이유다. 내년 1월 31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3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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