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윤곽이 드러날 것 같던 새 총리 인선구도가 안개 속에 빠져들고 있다. 청와대가 정치인도 후임 총리로 발탁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새로운 인선 원칙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은 총리 인선과 관련 20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인이든 비정치인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백지상태에서 생각하고 있다”며 “언론에 거론된 분을 포함해 4~5명으로 압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 실장은 “대통령은 이번주중엔 큰 가닥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해 늦어도 주말에는 인선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 실장이 밝힌 총리 인선 방향은 지난 17일 5당 원내대표 초청 만찬에서 노 대통령이 언급한 인선 구상과 사뭇 다른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주목되는 대목은 정치인의 후보군 배제 여부. 이 실장은 ‘당초 정치인은 배제되는 것 아니었나’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노 대통령은 특별이 그것(정치인 배제)에 방점을 찍지 않았다”며 “모든 분을 백지상태에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17일 노 대통령은 야당 대표들이 총리발탁에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하자 농담조였기는 하지만 “야당의 마음에 쏙 드는 분일 것”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테니 대통령과 생각이 맞는 분을 이해해달라”이라고 밝혔다.
이 발언은 정치인배제 원칙으로 해석되기 충분했고, 청와대 참모들도 대체로 묵시적으로 동의했다. 이에 따라 청와대 안팎에서는 참모형으로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이, 관료형으로는 전윤철 감사원장이 각각 유력한 것으로 관측돼 왔었다.
하지만 이 실장은 새 총리 후보에 정치인이 포함됐는지 여부에 대해 "(대통령이) 정치권, 비정치권이라고 나눠서 말한 적은 없었다“며 “정치인이라고 해서 정치 색이 없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분히 정치 색이 엷은 정치인 기용을 염두해 두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 실장이 굳이 기자간담회를 자처한 것도 ‘잘못 짚고 있는’ 언론의 후임 보도 물꼬를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한때 하마평에 올랐다가 ‘정치인 배제’로 물 건너 갔던 문희상ㆍ임채정ㆍ한명숙 의원 등 정치인 후보가 되살아나는 형국이다. 특히 정치 색이 엷고 환경부장관을 역임해 행정경험까지 겸비한 한명숙 의원이 급부상하고 있다.
한 의원의 경우 이 실장이 이날 총리 인선기준으로 꼽은 ▦국정의 안정적 운영 ▦지방선거에 따른 정치적 중립성 ▦참여정부 정책 이해도 ▦국회와의 의사소통 ▦행정능력 ▦대국민 정서적 안정감 등을 대체로 만족시키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아직 누구라고 결심하지 않았다”면서 “현재로선 정치인으로 간다, 아니다고 말한 단계가 아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