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이중섭의 대표작 '황소'가 서울옥션 경매에 나왔다. 소를 주로 그렸던 이중섭의 1953년 전성기 작품으로 1972년 전시 이후 40년
만에 나온 이 그림을 두고 미술계는 박수근의 '빨래터(45억2,000만원)'가 세운 최고가 기록을 깰 수 있을지 주목했다.
이 명작을 35억6,000만원에 낙찰 받은 이는 안병광 유니온약품그룹 회장이었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시작해 자수성가한 기업인이자 미술품 컬렉터로 유명한 안 회장은 14일 서울경제와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술품 수집은 부자들의 사치 놀음이자 부의 대물림 수단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제발 사라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의 그림 수집은 30년 전 어느날 액자가게 쇼윈도에서 처음 본 '황소'의 복사본을 7,000원에 샀던 데서 시작됐다. 비록 사진을 넣은 싸구려 액자지만 언젠가는 꼭 '진짜'를 사겠다고 다짐했었다. 1983년 당시 월급이 23만원 남짓했는데 금추 이남호의 '도석화'를 20만원에 샀던 게 첫 컬렉션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사 모은 작품이 400여점. 안 회장은 지난 2012년 부암동 인왕산 자락에 흥선대원군의 별장이었던 석파정 자리를 사들여 서울미술관을 개관했다. 자신의 소장품을 기반으로 기획전을 하되 전시 운영은 학예실 전문 인력들에게 일임했다.
"그림을 소장하고 수집한다고 하면 부의 축적이나 부정한 대물림이라고 의심 받습니다. 저는 좋아하는 그림을 얻기 위해 돈을 모았습니다. 그림 수집을 나쁘게 보시는 분들께 '단돈 10만원짜리 그림이라도 직접 사서 빈벽에 붙여보세요'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집안 분위기가 바뀌고 가족 간에 대화가 생길 겁니다. 20만원짜리 그림이 2,000만원, 2억원의 가치도 갖는 것, 그게 예술의 힘입니다."
사실 고가의 미술품을 구매하는 컬렉터들은 경매 같은 공개시장보다는 드러나지 않는 개인거래를 선호한다. 구입자금 출처에 대한 추궁 등 불필요한 잡음을 애당초 피하려는 것일 뿐 꼭 은닉을 위한 것이라 볼 수만은 없다. 그럼에도 안 회장은 과감히 경매 구입을 택했다. 다시는 손에 넣지 못할지도 모를 작품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외국 작품 못지않은 우리 근대 미술품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 꾸준히 수집한 안 회장은 투자 목적으로 외국 고가 작품만 사들이는 '문화 사대주의'를 경계했다.
"손재주로는 한국사람이 세계에서 으뜸이라고 합니다. 세계적인 작가를 못 만드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업신여기는 걸림돌 때문입니다. 국민소득 2만6,000달러 이상이면 문화국민이 돼야 하는데 아직도 저개발 국가의 사대주의에 빠져 있으니까요."
그는 '미술 사랑' 때문에 세무조사까지 받았지만 언젠가는 이 같은 부정적 인식이 사라지기를 바라고 있다. 안 회장은 "미술품을 금액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며 "보는 사람에 따라 가치는 달라지고 미술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감성적 공통분모를 찾는다면 사회갈등 해소나 창조경제의 저변 형성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