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12월 11일] 세종시 피로감

세종시 이전 논란은 겉보기에는 정권과 충청권의 갈등인 것 같지만 실제로 따지고 보면 보혁(保革) 간의 헤게모니 다툼이다. 보혁 갈등의 응어리를 충청권의 민심과 박근혜 의원의 정치적 셈법이 뒤덮어버린 형국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던가. 우리나라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세종시 문제의 역학구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신라에서 고려로 왕조가 바뀔 때 도읍은 경주에서 개경으로 바뀌었고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넘어갈 때는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를 단행했다.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배 이후 남북한으로 분열될 때는 각각의 수도가 서울과 평양으로 나뉘어졌다. 정권교체 때마다 판갈기 되풀이 이렇듯 역사를 살펴보면 도읍이나 수도의 이전은 왕조나 국가가 새로 들어설 때마다 되풀이됐다. 새로운 집권세력의 입장에서 볼 때 수도나 도읍을 옮기면 구(舊)왕조가 선점하고 있던 토지나 지역ㆍ인맥에 기반했던 기득권을 손쉽게 해체할 수 있고 새 정권 구축이 그만큼 쉬워지기 때문이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노무현 정부 때의 행정중심복합도시 추진도 그 궤를 벗어나지 않는다. 노무현 정권은 근현대사에서 처음으로 출현한 진보세력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를 동색(同色)의 좌파로 분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이념적 좌표는 비슷할지 몰라도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은 성격이 다르다. 김대중 정권은 계파정치의 마지막 세대였던 반면 노무현 정권은 계파경쟁을 종식시키고 정치를 보혁 간 이념대결 구도로 전환시킨 사실상의 첫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김대중 정부 때 잠잠했던 수도이전 문제가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되기 시작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물론 교통ㆍ통신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수도이전의 의미를 그 정도까지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겠지만 행정도시 이전에 따라 부동산이라는 재화를 기반으로 한 부와 권력의 부침, 이해득실은 여전할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헌재에서 위헌 결정을 내렸음에도 노 대통령이 '행정'이라는 간판을 '세종'으로 바꿔 달아 관철시킬 만큼 집착한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진보의 속내가 그렇다면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보수정권의 집념도 간단치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보수진영의 입장에서는 행정복합도시에 분칠을 한 세종시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종시 공방은 충청권의 분노와 차기를 노리는 박 대표의 정치적 이해가 맞물려 여권 내부까지 분열되는 전방위 난타전으로 변질돼버렸다. 하지만 세종시를 원안대로 고수하려는 진보세력에나 축소하려는 보수진영에나 문제는 5년 단임이라는 대통령 임기다. 5년이라는 시간은 행정복합도시를 완성하기에도 촉박하지만 이를 되돌리기에도 충분치 않아 보인다. 노무현 정부는 세종시 추진이 저항에 부딪히자'다음 정권이 딴 짓을 못하도록 대못을 박겠다'며 공사를 서둘렀지만 세상이 세종시 문제로 이렇게 시끄러운 걸 보면 그 대못이라는 것도 새 정권이 휘두르는 장도리 앞에서는 무용지물임이 분명하다. 보혁 갈등으로 국력소모 말아야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가 5년 단임이라 눈치 보지 않고 일할 수 있어 더 좋다'고 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정권이 보-혁-보-혁 순으로 교체돼 세종시 같은 전 정권의 정책을 뒤집고 취소하고 싸움질로 날이 샌다면 그에 따른 피로감과 국력소모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기야 정권교체 때마다 행정도시 이전 같은 홍역이 되풀이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보혁 간에 질러대는 어깃장이 5년마다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 이러다가 5년에 한번씩 대통령선거가 끝나면 국민들이 판 갈아엎기의 공포에 떨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추워지는 겨울 날씨에 마음까지 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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