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

이재광 광명전기 대표 동반성장위원회 위원


세계 최고의 프로야구로 평가받는 미국의 메이저리그, 그리고 그 안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는 추신수 선수의 소식을 듣자면 절로 흐뭇한 기분이 든다. 4년이 넘는 열악한 마이너리그 생활을 넘어 메이저리그에서 화려한 꽃을 피운 그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미국 프로야구에 마이너리그가 존재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어쩌면 우리는 추신수 선수의 기분 좋은 소식을 접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미국 야구가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로 분할하는 '공정한 경쟁의 룰(Rule)'을 만들어서 비슷한 수준의 선수들이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유사한 대·중소기업 간 '경쟁의 룰'이 존재한다. 바로 '중소기업 적합업종'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그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자율적인 합의를 통해 무분별한 사업확장을 자제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찾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것으로 올해 도입 3년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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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경쟁의 룰을 만들었을까. 2006년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가 폐지된 후 대기업들은 그간 축적된 자본을 기반으로 사업범위의 확장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중소기업이 개척해 수십 년간 일궈온 순대, 막걸리, 재생타이어 등 전통제조업과 도·소매, 숙박 및 음식점업과 같은 생계형 서비스업까지 가리지 않고 영역을 확장했다. 2007년부터 4년간 대기업집단에 편입된 계열사가 652개나 되고 이중 75.5%가 생계형 서비스업을 포함한 비제조업이라는 연구결과만 보더라도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경제의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대·중소기업이 합리적인 역할분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이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발전했다. 적합업종·품목 선정은 '중소기업 적합성'과 '민간 자율합의'라는 두 가지 원칙을 두고 진행됐다. 우선 중소기업이 생산하기에 적합한지를 판단하기 위해 해당 품목 시장의 크기, 종사자 수, 외국기업의 잠식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했다.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이 순대나 판두부 같은 품목들을 생산하는 게 과연 사회 전체적으로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가를 전문가들이 검토한 것이다. 다음으로는 민간 자율적 합의를 기반으로 했다. 소모적인 논쟁과 오해를 넘어서 대·중소기업이 한자리 모여 대화와 양보를 통해 상호이해를 높이고 '지킬 수 있는 범위'만 적합업종으로 지정하기 위해서였다.

공교롭게도 최근 2011년 지정된 적합업종·품목의 재지정을 위한 대·중소기업 간 논의를 앞두고 일부에서 적합업종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적합업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아직도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일부 대기업들이 적합업종 권고사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소상공인들은 대기업의 진출로 골목상권이 무너지고 있다고 호소한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적합업종의 실효성 강화방안을 고민하고 지속적으로 생계형 적합업종·품목을 지정함으로써 소상공인·중소기업들의 생존 기반을 지켜줘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군맹무상(群盲撫象), 눈먼 사람 여럿이 코끼리를 만진다는 뜻으로 사물을 좁은 소견과 주관으로 잘못 판단함을 이르는 말이다. 적합업종에 대한 충분한 배경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어렵게 만들어진 사회적 규범에 상처 내는 말들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중소기업에 '적합'한 업종, '중소기업 적합업종' 우리 모두가 제대로 알고, 제대로 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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