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도 예산을 짜면서 내년에 일반회계에서 공적자금 상환을 위해 지원키로 한 2조원을 내후년으로 미루고, 대신 공자금 상환용으로 2조원의 국채를 발행키로 했다. 이로써 공자금 상환을 위해 발행하는 국채규모가 49조원에서 51조원으로 늘어났다.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내년도 세수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늘어난 예산수요를 맞추기 위해 만만한 공자금을 다시 이용한 셈이다.
예산은 세수형편에 따라 조절해야 한다. 빚은 나중에 갚기로 하고 우선 그 돈을 경기활성화를 위해 쓰겠다는 것이므로 탓할 바는 아니다. 정부가 내년의 경제성장률을 8%대로 낙관하고 있는데, 경기가 좋아지면 한꺼번에 갚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기업들이 불투명한 경기전망으로 인해 투자를 기피하고 있는 마당에 정부라도 나서 빚을 내서라도 투자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투자 없이 성장도 없다는 점에서 투자를 위해 국가가 빚을 지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그러나 빚의 일반적인 속성은 안 갚을 수 있다면 안 갚는게 최선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경기불황은 국가나 개인이나 구별없이 빚을 안 갚기 위한 가장 찾기 쉬운 구실이다.
정부의 공적자금관리백서를 보면 97년말부터 지난 6월말까지 투입된 공적자금은 모두 160조5,000억원에 이른다. 이 중에서 정부가 환수한 금액은 58조2,048억원으로 회수율은 36.3%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는 지난해 종적자금 상환계획을 발표하면서 공적자금 부실금액 69조원 가운데 49조원은 정부가 일반회계에서 매년 2조원씩 떼서 25년에 걸쳐 상환하고 나머지 20조원은 금융회사들로부터 특별보험료를 받아 충당하겠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이번 상환연기로 공적자금 상환일정에 차질이 생겼고, 정부가 상환해야 할 공적자금의 규모가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문제는 정부의 자세다. 빚은 너무 두려워 할 것도 아니지만 너무 가볍게 보는 것은 더 위험하다.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은 그 같은 빚을 우습게 아는 습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빚은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갚는 것이 바람직하다. 상환기간 25년은 너무 길다.
정부의 공자금 정책이 조성과 지원에서 회수와 상환으로 잡은 것은 타당하지만 아직도 공자금의 관리에는 여러 허점이 있어 보인다. 6월말 현재 예급보험공사와 경영정상화 이행약정을 맺은 11개 금융기관에 대한 이행실적 결과를 보면 공자금 덕분에 쥐꼬리 이익이 난 은행들은 성과급으로 나눠 갖기에 바빴다. 이처럼 관리와 회수도 부실한 터에 제때에 상환도 안 되는 일이 더 이상 되풀이 돼서는 안 된다.
<이병관기자 comeo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