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경제 포스트버블 시대● 일본 닮아가나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16일 "미국 경제는 장기적이고, 강력한 회복을 재개할 것"이라며 낙관론을 폈다. 그러나 그린스펀 의장이 발언하는 동안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 지수는 200 포인트나 폭락, 7일째 하락세를 지속했다.
FRB 내부에서는 일본식 디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뉴욕 월가 이코노미스트들은 최근의 증시 폭락을 90년대초 일본 경제가 도쿄 주가 폭락후 장기침체에 돌입한 것과 비교하는 보고서를 내고 있다.
뉴욕 증시의 거품이 빠르게 꺼지고 있다. 다우존스 지수는 두달 사이에 2,000 포인트, 2주일 사이에 1,000 포인트나 급락, 이 속도로 가다가는 뉴욕 증시가 붕괴할 우려를 낳고 있다. 많은 미국인들은 뉴욕증시의 상징적인 30개 블루칩 지수마저 나스닥 지수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두려워 하고 있다.
지난 90년대초 일본은 부동산과 증시 거품이 붕괴되면서 초기엔 금리를 0% 가까이 인하했고, 나중엔 은행부실을 막기 위해 재정 확대 정책을 취했다. 이런 조치들이 무위로 돌아가지 97년엔 엔화 약세로 수출을 살리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달러에 자국 통화를 고정시켰던 한국등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위기를 겪었다.
미국은 지난해 경기 회복을 위해 공격적인 금리 인하를 단행하고, 재정 확대 정책을 채택했다. 금리를 더내리기 어렵게 되고, 5년만에 재정 적자가 발생하자 올해는 달러 하락을 용인, 일본과 비슷한 패턴을 걷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장기침체는 아시아의 문제로 그쳤지만, 미국의 거품 붕괴가 가져올 불확실성은 세계 경제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올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올들어 뉴욕 증시의 블루칩 지수가 급락하면서 월가 경제전문가들 사이에 현재의 미국 경제가 90년대초 도쿄 증시의 거품 붕괴로 일본이 장기 불황에 돌입한 것과 비슷하지 않느냐는 논란을 벌이고 있다. 지금 미국 경제가 겪고 있는 ▦주가 폭락에 따른 자산거품 붕괴 ▦자본투자 위축 ▦소비 둔화 ▦초저금리 ▦실업률 증가 등이 10년전 일본의 경제 상황과 오버랩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보다 ▦은행 시스템이 건실하고 ▦부동산 거품이 덜 심하며 ▦FRB와 연방정부가 신속하게 금융 및 재정정책을 취했기 때문에 일본의 과거를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월가 이코노미스트들은 주장한다.
90년대초 당시 미에노 야스이 일은(日銀) 총재는 오늘날 그린스펀 의장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처럼 "경제의 기초가 단단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80년대를 풍미했던 일본식 경제의 효율성은 메모리칩 분야의 투자 위축으로 삐걱거리기 시작했으며, 4만 포인트를 목전에 두었던 니케이 지수는 90년 새해벽두에 붕괴됐다.
90년대에 글로벌 스탠더드임을 자부했던 미국의 신경제는 정보통신(IT) 산업 붕괴로 한계를 드러냈고, 새로운 밀레니엄 도래와 함께 5,300 포인트까지 갔던 나스닥 지수는 지금 4분의1 수준인 1,300 포인트대로 폭락했다.
이제 미국의 블루칩 지수들이 급락하고 있다. 다우존스 지수는 그린스펀 의장이 지난 96년말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라는 용어로 증시 거품을 경고했을 때의 수위(6,400 포인트)에 2,000 포인트 차이로 좁혀졌다.
광의의 블루칩 지수인 S&P 500 지수도 올들어 21.5% 하락, 수십년만의 최대폭의 하락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 2년반 동안 계속됐던 "베어마켓(bear market)은 앞으로 몇 년은 더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10년간 증시 호황으로 미국인 성년의 절반 이상이 주식을 보유하고, 개인 자산에서 주식 비중이 부동산만큼 높아졌다. 따라서 증시 폭락은 개인의 자산 감소의 효과를 가져와 소비 심리를 둔화시키고, 금융거래 감소로 세수부족을 초래하고 있다.
미 연방정부는 증권 거래가 급감, 올해 1,650억 달러의 재정 적자가 발생, 지난 4년간의 흑자시대를 마감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증시 폭락, 회계 부정등으로 미시건대 소비자심리지수가 6월 92.4에서 7월에는 86.5로 급감했다.
증시 하락은 기업들로 하여금 직원을 더 자르고, 투자를 지연시킬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그린스펀 의장도 16일 의회에서 "신뢰의 위기로 인한 증시 하락이 자본 투자를 위축시키고 경제 회복의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
뉴욕=김인영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