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리더십부재發 유럽 위기론

최윤석 기자 <국제부>

유럽연합(EU) 헌법에 대한 회원국들의 비준 절차가 결국 중지됐다. 이로써 내년 11월 예정이던 비준 완료 시한도 더 이상 의미 없게 됐다. 이제 EU 헌법이 언제 마련될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헌법이 없다고 EU가 깨지는 것은 아니지만 헌법이 있어야 보다 분명한 존재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헌법 없는 EU는 사상누각과 비슷하다. 유럽의 대통령과 외무장관을 뽑아 단일 목소리를 내고 결과적으로 보다 강력한 유럽을 구현하자는 것이 유럽 헌법의 근간이지만 이에 대한 반대는 정치ㆍ외교적이기보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5월 동유럽 10개국을 새로 받아들이기로 한 후 서유럽 국가들의 일자리 등에 대한 위기의식은 하나의 유럽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회의를 낳았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불안의 근저에는 국민들에게 유럽 통합의 비전과 이에 맞는 경제개혁의 필요성을 설득시키지 못한 리더십의 부재가 자리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를 두고 유럽 헌법의 위기는 리더십의 부재라는 보다 큰 위기의 일부라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모두 유효기간이 끝난 리더들이라고 최근 사설에서 썼다.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결국 자신의 태생적 한계를 벗어던지지 못했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극우파 장마리 르펜 후보의 급부상을 경계해 좌파세력들이 “시라크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공화국 프랑스를 위해 시라크를 지지한다”고 밝힌 후 지난 10여년간 시라크 대통령은 엘리제 궁의 강한 추진력을 선보이지 못했다. 2003년 대대적인 시장개혁을 표방한 ‘어젠다 2010’을 선보이며 자신에 대한 지지자들을 놀라게 한 중도 좌파의 슈뢰더 총리가 최근 지역선거에서 패배한 후 이를 뒤집는 듯한 발언으로 시장을 헷갈리게 한 점도 유럽인들의 불안을 더욱 키우고 있다. 의회가 아니라 국민투표로 했더라면 독일에서도 유럽 헌법안 통과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한 공동체의 비전, 그리고 이에 대한 소속원들의 신뢰, 이 모든 것은 공동체를 이끄는 리더에 대한 믿음이 생길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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