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수필] 재벌기업의 전문경영인

재벌개혁의 태풍 속에서 어쩌면 재벌개혁의 주체로 부각돼야 할 재벌기업의 전문경영인들이 요즘 조용하기만 하다. 숨을 죽이고 오히려 「새우등이나 터지지 않았으면」하는 것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바쁘기만 하다는데 그렇게 신나는 일을 하는 듯 싶지는 않다.어떤 전문경영인은 그저 대죄(待罪)하는 심정이라고 말하면서 『걱정말고 일해라. 전문경영인 시대가 됐다.』고 누군가 외치는 것 같았으나 공허하게 들리기만 한다고 했다. 무언가 해보려는 의욕보다는 이제 그만둘 때가 됐다는 반응이 앞서고 어디 끌려 다니지나 않았으면 한다는 자조적인 말을 하는 사람까지 있다. 이들의 관심은 재벌개혁이 언제쯤 끝날 것인가에 있다. 『재벌은 끝내 해체되는가. 겁주기·혼내기·길들이기·두눈 밝혀 감시하기의 차원을 넘어 재벌체제 자체가 근본적으로 뜯어 고쳐질 것인가. 재벌개혁은 도대체 누가 해야 할 것인가. 앞으로 재계 모습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얼마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코리아 리서치에서 전국의 20세 이상 500명을 대상으로 재벌개혁에 대한 전화조사를 했다. 그 결과, 김대중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로 표현한 재벌개혁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가 30%, 약간 지지가 40%로 응답자의 70%가 지지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재벌개혁이 김대중 대통령 임기(任期)안에 성공할 것으로 보이는가」라는 질문에는 53%가 임기 안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재벌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연령·학력·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지만 임기 안의 개혁성공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의견이 많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총론 찬성, 각론 반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총론 OK, 각론 난항(難航)」의 대표적인 케이스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강봉균 재정경제부 장관이 재벌에 대한 인식의 이중성(二重性)을 지적한 바 있는데 자기 이해관계와 관련하여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재벌에 대한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재벌을 비판하면서도 재벌을 신뢰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국민의 정서를 바탕으로 재벌은 개혁돼야 한다. 재벌기업에서 평생을 일해온 어떤 전문경영인은 중얼거리 듯 말했다. 『재벌총수에 대한 의리(義理), 덧없어지는 그동안의 회환(悔恨)으로 친구들 모임도 삼가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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