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로펌 대표와의 '솔직토크'] 백윤재 법무법인 한얼 대표변호사

방송국 PD 꿈꾼'법조계 라디오 스타'<br>청취율 30%대 '생활법률' 95년부터 6년여간 진행… 금융·통상분야 자문 정통<br>대표적 기업법 전문변호사 "작지만 강한 로펌 만들것"



법무법인 한얼의 백윤재 대표변호사는 법조계의 ‘라디오 스타’다. 문화방송(MBC) ‘백윤재의 생활법률’을 1995년부터 6년여간 진행하면서 법률적 곤경에 처한 서민들과 애환을 함께 했다. 방송 시간이 3분여에 불과해 공식 기록은 집계되지 않았지만 청취율이 최소 30%는 웃도는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라디오 출연을 그만둔 지 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의 구성진 목소리를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백 대표는 “한번은 목소리를 알아본 택시 기사께서 소송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기에 즉석 상담을 해 줬더니 한사코 택시비를 받지 않으시더라”며 웃었다. ◇학창시절 꿈은 방송국 PD= 백 대표가 라디오 진행을 맡게 된 계기는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수임한 사건문제로 방송국에 잠깐 들렀는데, 그때 한 지인이 “목소리 테스트를 한번 받아보라”고 권유한 게 계기가 됐다. 결국 테스트에 합격하고, 현장에서 바로 마이크를 잡게 된 것. 백 대표변호사는 “어느날 갑자기 얼떨결에 라디오 진행자로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백 대표는 “’정치권에 진출하기 위한 사전작업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정치에는 뜻이 없다”고 일축했다. 그런데 백 대표와 라디오와의 인연이 단지 우연이었을까. 백 대표는 어릴 때부터 방송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고등학교 3학년까지만 해도 방송국 프로듀서(PD)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는 “법조인 집안 분위기 탓인지, 판ㆍ검사에 대한 동경은 별로 없었다”며 “오히려 사회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자유분방한 PD에 더 관심이 많았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아들이 판검사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기대를 꺾지는 못했다. 백 대표가 신문방송학과에 지원하겠다고 선언하자, 그의 어머니는 충격을 받아 드러눕기까지 했다. 고민하던 백 대표는 “진로는 대학에 가서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담임 선생님의 충고를 받아들여 결국 법대에 진학했다. ◇알만한 대기업 10여곳이 고객= ‘라디오 스타’ 백 대표는 국내 대표적인 기업법 전문 변호사로 손꼽힌다. 법무법인 광장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해 미국으로 유학,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뒤 법무법인 한얼을 세웠다. 한얼은 초기부터 기업법 전문 ‘부티크 로펌’을 표방했고, 인수합병(M&A), 금융과 통상, 지적재산권, 중재 등 기업활동에 관한 전반적인 법률 자문에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실적은 놀라울 정도다. ㈜STX 등 대기업 설립에 대한 법률 자문뿐 아니라 인도네시아와 카자흐스탄 등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참여했고, 아남전자·영창악기 등 기업회생 및 회사정리절차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한얼의 클라이언트(고객)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포스코, 효성, 신세계, 아시아나항공 등 국내 내놓라 하는 10여개의 대기업이 한얼의 실력을 믿고 일을 맡기고 있다. 백 대표는 “지난 10여년간 고객사들로부터 작지만 일 잘하는 로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대형 로펌들과 수도 없이 맞상대를 했지만 한번도 밀린 적이 없다”고 자부했다. ◇변호사란 직업은..= “변호사란 직업을 한마디로 정의해 보세요.” 백 대표가 신입 변호사를 채용할 때 던지는 질문이다. 모범답안은 없겠지만, 박 대표는 “변호사는 자동판매기”라며 다소 생소한 정의를 내린다. “마치 동전만 넣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음료수를 뽑아 마실수 있는 자동판매기처럼 고객들이 궁금해하는 사안에 대해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답변을 주는 사람이 최고의 변호사다.” 그의 간단하고 명료한 변호사에 대한 정의다. 백 대표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법무법인 김신유(현 법무법인 화우)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해상법 관련 소송 업무를 보조하면서 판ㆍ검사와 달리 고객이 처한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변호사의 세계에 매료됐다. 그때부터 고객은 자신의 동반자라는 생각에 상담후 고객을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하는 등 낮은 자세를 유지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변호사의 서비스정신이라는 게 부각되지 않을 땐 데도 백 변호사는 철저한 서비스 정신으로 고객을 사로잡았다. 백 대표는 “변호사는 특권을 가진 갑이 아닌 을이 되어야 한다는 소신을 늘 갖고 있다”며 “당연한 얘기인데도 당시에는 좀 유별나게 보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작지만 알찬 로펌 만들겠다”= 그의 목표는 “작지만 강한 로펌”을 만드는 것이다. 규모가 작아 겪는 ‘불편함’도 있지만, 몸집 불리기에는 부정적이다. 그는 “로펌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규모가 커지면 로펌 운영 비용은 그 이상으로 늘어나고 결국 고객에게 부담이 전가된다”며 “성급한 대형화는 오히려 로펌과 고객에게 독이 될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미국의 예를 보면 기업 전문 로펌은 변호사 수 30명 정도가 가장 적당한 것 같다. 합병보다는 점진적인 성장을 통해 변호사 수 30명 정도의 기업전문 부티크 로펌을 지향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서 보고 익힌 로펌 경영을 한얼에도 접목해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백 대표는 과거에 처리한 모든 사건을 서버에 저장해놓고 구성원들이 항시 열람이 가능하도록 해 놨다. 이 같은 자료덕분에 한얼 변호사들은 아무리 생소한 사건이라도 당황하지 않고 고객이 원하는 답을 최대한 신속히 제공할 수 있다. 그래서 한얼의 업무처리 속도는 업계 최고 소리를 듣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변호사들의 업무량 수준도를 컴퓨터로 수시로 체크하도록 해 성과측정에 활용한다고 백 대표는 귀띔했다. ◇휴가는 비행기에서?= 백 대표는 지난 수년간 가족과 함께 휴가 한번 제대로 다녀오지 못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5년전 부모님을 모시고 효도관광을 다녀온 게 그의 마지막 휴가다. 그는 주말도 없다. 매번 주말에 사무실에 나와 한주간의 일을 정리하고, 그 다음주의 계획을 세운다. 그는 “해외 출장길에서 비행기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는 게 유일한 휴가라면 휴가다”라고 수줍게 웃었다.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백 대표지만, 그는 음악을 들으며 스트레스를 날린다. 클래식도 즐겨 듣지만, 원더걸스의 ‘소핫’, 이효리의 ‘유고걸’ 등 최신 인기가요도 즐겨 듣는다. 백발이 성성한 그의 겉모습을 보면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자녀들과의 소통을 위해서라도 챙겨 듣는다고 한다. 백 대표의 자녀들은 미국에서 유학 중인데, 잠깐 잠깐 나누는 메신저 대화는 그의 또 다른 삶의 재미가 되고 있다.
■ 법무법인 한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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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국제금융·지재권 분야등서 두각
법무법인 한얼은 1997년 8월 출범한 기업법률 전문 로펌으로 기업 법률, M&A, 국내ㆍ국제금융, 증권, 무역, 해외투자, 지적재산권, 특허 등의 분야에서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00년 국내 최초로 제3자 대기업 인터넷 도메인명 불법사용을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에 제소, 승소를 이끌어 냈으며, 그 밖에 아남반도체 구조조정, 쌍용중공업 계열분리, ㈜옥시 매각, 포스코 베네수엘라 현지법인 관련 분쟁 해결 등 눈에 띄는 자문 실적을 쌓아가며 업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현재 백윤재 대표 변호사 외에 천기홍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 고문 변호사를 맡고 있으며, 미 국방성 변호사를 9년간 맡았던 이기창 변호사를 비롯한 영어에 능통한 변호사들이 포진해있다. 한얼은 앞으로 기업들의 해외 자원개발 진출을 적극적으로 자문, '자원개발 시대'에 어울리는 특화 서비스를 발전시켜나간다는 계획이다.

■ 약력

▦ 1959년 서울 출생
▦ 1978년 서울 한영고등학교 졸업
▦ 1982년 서울대학교 법학과 졸업
▦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 합격
▦ 1984년 사법연수원 수료(제14기)
▦ 1993년 미국 하버드 로스쿨(LL.M.)
▦ 1994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자격 취득
▦ 1995년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MBC 라디오 '백윤재의 생활법률' 진행
▦ 1997년 한얼법률사무소 개업
▦ 2005년 대한변호사협회 사업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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