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으레 새해 경제전망이 핫이슈로 부각되지만 올해는 대선정국에 묻혀 별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위기논쟁까지는 아니라도 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는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와 중국의 긴축움직임, 유가급등을 비롯해 우리경제에 직격탄이 될수 있는 악재들이 잇달아 불거지고 있는데도 강 건너 불 보듯 이상할 정도로 태연하다. 금융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해 금리인하 및 긴급자금 방출등을 통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미국ㆍ유럽등 선진국들과는 대조적이다.
내부적으로도 유가폭등에다 은행에 돈이 마르고 시중금리가 급등하면서 기업들이 자금확보에 비상이 걸려있는데도 정책당국은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대내외 악재 강건너 불 보듯
우리경제는 성장 물가 국제수지와 같은 거시지표만 놓고보면 큰 문제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5%안팎의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고 물가도 지금까지는 관리범위 내에서 안정되고 있다. 악조건 속에서도 수출은 여전히 호조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내부를 들여다보면 불안한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에 휘청이고 있는 미국의 경기둔화와 중국의 긴축움직임이 가시화되면 수출이라는 하나의 엔진에 의존하고 있는 성장구조가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수출과 내수 부문 간 업종양극화와 같은 문제는 덮어두고라도 수출에 문제가 생기면 당장 5%정도의 성장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내 소비와 투자가 살아날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민간소비와 기업투자가 다소 회복될 것이란 기대가 없지 않았으나 시중 금리가 급등하면서 물 건너 가는 형국이다.
먼저 일자리 창출이 안돼 소득증가율이 낮은 상태, 가계부채가 600조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금리가 치솟다보니 소비지출 여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부동산침체와 주가하락등으로 자산효과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이런 영향을 별로 안 받는 부유층들의 경우도 해외소비가 일상화되면서 국내소비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어 역시 한계가 있다.
악재들이 잇달아 불거지고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기업들의 투자마인드도 얼어붙기 마련이다. 국내외 경제전망에다 열악한 투자환경 금리까지 치솟고 대선 이후의 정책 불확실성이 겹친 상황에서 기업들이 투자에 나설리가 없어 보인다. 되레 현금확보와 안전 경영으로 돌아설 공산이 높다. 최대기업 삼성 특검과 같은 돌발상황도 장기화될 경우 수출과 투자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되고 있기도 하다.
자만 버리고 현실 직시해야
경제가 항상 좋을 수만 없다. 상승과 하강을 거듭하는 경기순환은 자본주의 경제의 속성이고 가끔 치명적인 위기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위기는 막연한 낙관론과 선입견ㆍ자만심 등에 사로잡혀 경제흐름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주의를 게을리 할 때 닥친다.
우리의 외환위기가 그랬고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부동산대출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도 이런 예에 속한다. 정권 말의 대선정국이지만 정책당국은 경제에 좀더 관심을 가지고 바르게 대응하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지난 50년래 최악이라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로 세계금융이 요동치고 있는데도 국내 금융기관들은 물린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괜찮다는 식으로 끝내도 무방한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내수와 투자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유가급등으로 코스트푸시 인플레이션, 나아가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동성증가를 빌미로 통화긴축을 펴 수요억제를 도모하는 것이 적절한 정책인지도 진지하게 따져봐야 한다.
우리경제는 로빈슨 크루소의 자급자족경제가 아니다. 예측하기 어려운 세계경제의 변동이 거의 무방비상태로 노출돼 있는 우리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기관리 능력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