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권집중 억제정책 전면수정'억제'명분 집착땐 무한경쟁서 낙오 판단
정부가 수도권집중 억제정책을 전면 수정하기로 한 것은 명분론에 매달릴 경우 우리 경제의 성장 에너지가 고갈될 수 있다는 절박한 현실 인식에서다.
국경의 개념이 엷어지는 글로벌 무한경쟁의 시대에 외국기업과 고급인력의 유치가 절실하며 이를 위해서는 외국인들이 원하는 수도권 제한을 풀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산업연구원의 지적대로 수도권 규제가 사실상 실패했으며 주요 국가들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새로운 산업지도를 그리고 있다는 점도 정책변경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과제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지역간 균형발전의 포기가 아니냐'는 반발이 예상된다. 정책 변경의 당위성을 설득하고 변경의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된 셈이다.
■ 수도권 규제로 경쟁력 약화
수도권 공장입지 규제는 국내기업의 해외 이전을 초래하고 외국인투자를 발목잡고 있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지난 98년 국내 반도체 공장을 인수한 미국의 페어차일드코리아반도체(경기도 부천)는 당초 오는 2003년까지 2억달러를 투자할 예정이었으나 수도권공장총량제에 묶이는 바람에 신규 투자는 엄두도 못낼 뿐 아니라 최근 제3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구조조정 성공기업으로 손꼽히는 아남반도체는 비메모리 분야의 두개 라인을 증설하기 위해 외국인투자 2억달러 등 총 3조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수립했다가 수도권 규제로 무산됐다. 이로 인해 1,500명의 고용창출과 연 13억달러의 매출발생 효과가 사라진 것으로 분석된다.
■ 어떻게 바뀌나
특별법 형식이 동원된다. '경제특구설치특별법'을 통해 외국기업들이 수도권 규제의 적용을 피할 수 있다. 정부는 경제특구 이외 지역에서도 첨단업종에 대해서는 수도권 규제를 풀 방침이다.
산업자원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업배치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공배법)' 개정안도 수도권 규제를 피해가는 특별법. 정보기술ㆍ생명공학 등 첨단업종이 몰리는 '지식기반산업집적지구'에는 수도권 공장 총량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고 세제혜택을 준다는 게 골자다.
경제특구나 집적지구에 들어올 기업은 첨단 고부가가치 업종이면서 인구유발 효과가 적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 윈윈 전략, 지방도 혜택
재정경제부의 한 관계자는 "수도권 규제를 풀 경유 오히려 지방산업 단지에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우선 수도권 거점의 발전이 지방까지 파급된다는 것이다.
또 수도권에 들어올 기업을 위한 입지환경은 민자동원을 원칙으로 삼고 나머지 균형발전이 필요한 지역에 예산을 집중할 경우 모두가 이익을 보는 윈윈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다.
■ 선진국도 수도권 정책 수정
영국과 프랑스ㆍ일본 등 일부 선진국에서도 수도권규제 정책을 과감히 푸는 추세다. 수도권을 묶어둔다고 해서 지역이 균형발전한다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제경쟁력마저 밀리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의 수도권 정책은 수도권이 더이상 규제 대상이 아니라 세계 중심으로 기능하도록 한다는 인식의 전환에서 출발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70년대 경기침체와 IMF 구제금융기를 거치면서 실업문제와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수도권 규제정책을 포기했다.
우리의 공장총량제와 비슷한 공장개설허가제와 오피스개발허가제를 80년대 중반 폐지한 데 이어 '런던도크랜드개발공사'를 설립, 런던의 도크랜드 지역에 유럽 최대 도시재개발(세계도시 프로젝트)을 추진하고 있다.
또 영불 해저터널 완공을 계기로 유럽대륙 진출거점을 육성하기 위해 런던 동남부 해안을 개발지역으로 지정했다.
프랑스는 60년대 이후 줄기차게 추진한 수도권성장억제정책이 실패로 끝나자 88년부터 파리 외곽지역에 대규모 산업단지지역과 신도시를 건설하는 '일드프랑스 2000'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창의적인 기업활동을 간섭하고 감독하는 것이 아니라 인프라를 정부가 조성해줘 기업이 경쟁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기업환경을 개선하는 것으로 일드파리에 입주하는 기업에는 정보ㆍ마케팅ㆍ경영ㆍ기술지원과 함께 기업보조금까지 지급하고 있다.
일본은 '21세기 도쿄수도권계획' 구상을 통해 수도권 범위를 도쿄역으로부터 300㎞ 반경으로 확대, 왕성한 활력이 넘치는 수도권을 세계 중심지로서 위상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권구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