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박승진 세미물산 사장/첨단SW 개발로 해외시장 개척(창업스토리)

◎세계 첫 「재고품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상품화/국내시장 외면에 세계무역협 총회서 승부 걸어/미 ICES사 헨리 회장과 「팔씨름」으로 결판 성공95년 4월 어느날, 박승진 세미물산 사장(30)은 미국 뉴욕에서 ICES사의 헨리회장과 팔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멕시코에서 열리는 95년도 세계무역협회 총회에서 연설할 시간을 할애해 달라는 요구에 헨리회장이 난색을 표명하자 박사장이 『팔씨름으로 결판짓자』며 엉뚱한 제안을 한 것이다. 박사장은 헨리 회장의 굵은 팔뚝을 보는 순간 기가 질렸지만 『여기서 이기지 못하면 내 인생은 끝난다』는 각오로 이를 악물고 버티었다. 그러나 마음은 서글펐다. 보따리를 들고 한겨울의 러시아 공항에 내렸을 때 약속한 사람이 나오지 않아 몸으로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막던 일, 부도나기 직전의 세미물산에 등을 돌렸던 은행들, 세계 처음으로 「재고물품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을 개발하고도 국내에서 인정받지 못해 미국업체에 매달려야 하는 지금 자신의 처지가 파노라마처럼 머리속을 채웠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게 이마와 볼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미스터 박, 이제 그만 합시다. 팔에 쥐가 나겠습니다.』 마침내 헨리회장이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호쾌하게 웃으면서 악수를 청했다. 『미스터 박의 정열에 내가 졌습니다. 성의를 다해 도와주겠습니다.』 헨리 회장은 멕시코 세계무역협회 총회장에서 자신이 발표키로 한 60분의 시간중 20분을 박사장에게 할애해 주었다. 박사장은 그러나 자신이 천신만고 끝에 세계 처음으로 개발해낸 재고물품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의 노하우를, 이제 막 시스템을 개발중인 ICES사에 넘길 수밖에 없었다. 세계 각국의 무역협회에 재고물품 시스템을 공급하는 일은 ICES사를 통해서만 이뤄지도록 이미 구도가 짜여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박사장은 ICES사의 주식중 5%를 넘겨받고 ICES의 한국담당 사장직을 가지는데 만족해야 했다. 박사장의 어릴 때부터 꿈은 오로지 「장사」였다. 그래서 그는 외국어대 재학시절에도 과일장사와 컴퓨터장사로 꽤 돈을 벌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친 92년 『이제 마음놓고 수출장사를 벌여보자』며 세미물산이라는 무역업체를 설립했다. 박사장은 새로운 수출시장에 도전하겠다며 러시아·몽골 등지를 공략했지만 가격이 비싼 한국상품으로는 이들 지역에 먹혀들 수 없었다. 방법은 한가지, 가격이 싼 재고품을 수출하는 길 뿐이었다. 재고품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국내 상인들은 위기를 맞은 중소 제조업체들의 어려운 사정을 이용, 상상 이상의 낮은 가격으로 중기제품을 사들였다. 『재고물품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알려지고 실수요자와 중소기업이 연결될 수만 있다면 중소기업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을텐데.』 박사장은 재고품 수출사업을 계속하면서 한편으로는 재고물품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특유의 장사수완을 발휘, 회사를 키워나가던 박사장에게 수많은 시련이 닥쳐왔다. 러시아에 수출할 금고를 싣고 부산항으로 가던 컨테이너 트럭이 사고로 화재를 당해 큰 피해를 보기도 했고, 러시아측 바이어가 수출대금을 끝내 보내오지 않아 세미물산은 부도위기로까지 치달았다. 결혼한지 1년도 안된 박사장은 전세금을 빼 그 돈으로 물건값을 치러야 했다. 부부가 라면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는 날도 있었다. 더 큰 설움은 박사장이 천신만고 끝에 개발해낸 재고물품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을 국내에서는 알아주지 않는데 있었다. 박사장은 멕시코에서 세계무역협회 총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뉴욕으로 날아갔고,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완성해낸 재고물품시스템을 외국업체에 팔 수밖에 없었다. 박사장은 재고품에서의 도전목표가 거의 완료됨에 따라 이제 활동영역을 신품으로 넓혀가고 있다. 중소기업 제품을 취급하는 대규모 할인판매점으로 「예스마트(YES MART)」를 전국 곳곳에 개설한다는 방침아래 안양 1호점 개점 준비로 눈코 뜰새없이 바쁘다. 국내에서 민간기업이 중소기업 제품 공동판매장을 설치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예스마트의 임대료와 판매비용이 아주 저렴하기 때문에 중소 제조업체들이 예스마트에 입점해 생산품을 직접 판매할 경우 제품가격은 할인점보다 더 낮아집니다.』 박사장은 안양에 이어 분당, 부산, 대구, 광주, 강릉, 서울 등지에 예스마트를 잇따라 설립해 중소기업 판매난을 해결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최원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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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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