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3차 오일쇼크' 불안 확산] 과거 사례와 비교하면

70년대 1·2차 - 산유국 일방적 공급중단 탓<br>최근 초고유가 - 수급난에 투기세력이 원인


['3차 오일쇼크' 불안 확산] 과거 사례와 비교하면 70년대 1·2차 - 산유국 일방적 공급중단 탓최근 초고유가 - 수급난에 투기세력이 원인 이철균 기자 fusioncj@sed.co.kr 지난 1970년대의 1ㆍ2차 오일쇼크가 산유국의 일방적인 공급중단이 원인이었다면 최근의 초(超)고유가는 고질적인 수급난과 투기세력의 가세가 결정적인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말하자면 과거에는 필요한 만큼 원유를 아예 들여올 수 없는 위기였다면 지금은 원유를 수입할 수 있으나 그 부담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너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1ㆍ2차 오일쇼크가 아랍권의 자원무기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지나친 가격인상 등이 작용했다면 최근은 고유가 시대의 고착화, 실질공급 증대 없는 유가급등, 투기화 등의 특징을 보인다. 상승기간도 1ㆍ2차 오일쇼크가 1년 이내의 단기간 급등으로 세계경제에 타격을 줬던 반면 최근의 상승세는 어찌 보면 2002년부터 시작돼 꾸준히 그 위험성을 키워오다 지난해 6월부터 급등세가 나타나는 차이를 보였다. 올해 6월까지 국제유가는 1년 사이 두 배나 뛰어올랐다. ◇1ㆍ2차 오일쇼크, 산유국의 공급중단이 원인=1970년대 발생했던 1차와 2차 오일쇼크는 전쟁 등에 휘말린 산유국이 공급을 전격 중단하면서 발생했다. 더구나 산유국의 공급중단으로 국제유가는 단기간에 급등,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그만큼 컸다. 1973년 10월 이스라엘과 이집트간 제4차 중동전쟁이 발생하면서 아랍권은 석유의 무기화를 선언한다. 친(親)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석유의 금수 및 유가 인상으로 전세계는 제1차 오일쇼크의 충격에 휩싸였다. 당시 국제유가는 1973년에 배럴당 2.81달러에서 1974년에는 10.98달러로 급등했다. 단기간에 무려 290%의 급등세가 나타나면서 전세계 경제는 말 그대로 나락에 떨어졌다. 세계 물가상승률은 오일쇼크 이전인 1973년에 9.6%에서 오일쇼크 기간인 1974~1975년 연평균 13.8%로 올랐고 세계경제성장률도 6.8%(1973년)에서 2.4%(1974~1975년)로 4.4%포인트나 떨어졌다. 2차도 상황은 비슷했다. 회교혁명 성공 이후 원유의 주요 수출국인 이란은 1978년 12월27일 석유 수출을 전면 중단하면서 하루 560만배럴의 공급 차질이 발생한다. 여기에 1978년부터 OPEC은 자원민족주의를 표방하면서 국제유가를 14.5%나 전격 인상하는 조치를 취한다. OPEC은 1979~1980년 9차례에 걸쳐 유가를 인상하는 동시에 800만배럴이나 감산해 전세계는 공급부족 상황이 발생했고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이란ㆍ이라크의 전쟁으로 양국은 상대방의 유전을 파괴해 260만배럴의 공급차질도 발생했다. 2차 오일쇼크 역시 세계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컸다. 원유가격은 1979년 1월 배럴당 13.34달러에서 1980년 11월에는 42.50달러로 220%나 급등했다. 이에 따라 전세계 물가상승률은 1979년 12.5%에서 1980년 17.2%로 급등했고 경제성장률은 3.8%(1979년)에서 2.4%(1980년)로 하락했다. 반면 최근의 유가 급등은 잉여공급의 부족과 투기세력의 가세, 달러 가치 하락 등이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OPEC의 잉여생산 능력이 하루 100만배럴 안팎으로 줄면서 중국ㆍ인도 등의 석유수요 급증을 충당하지 못하고 있다. 또 낮은 국제유가가 한동안 지속되면서 산유국의 생산시설 투자나 소비국가의 정제시설 투자가 줄면서 수급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달러 값이 떨어지는 현상이 지속되자 투기세력이 원유 거래시장에 뛰어들면서 유가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도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미국, 유럽연합(EU) 등 주요 국가들은 수급난과 달러 약세의 틈새를 노린 투기세력이 원유시장을 투기화하고 있는 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보고 규제책을 마련하고 있다. ◇오일쇼크, 마이너스 경제성장률 기록도=산업화가 진행 중이었음에도 불구, 1ㆍ2차 오일쇼크가 한국경제에 미친 충격은 컸다. 경제성장률은 1973년 12.0%에서 1974년 6.6%로 하락했고 물가는 3.2%에서 24.8%로 급등했다. 또 무역수지의 적자폭은 10억2,000만달러(1973년)에서 22억9,000만달러(1974년)로 확대됐다. 2차 오일쇼크의 충격 수준도 비슷했다. 경제성장률은 1979년 6.8%에서 1980년 -1.5%로 급락했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같은 기간 18.3%에서 28.7%로 급등했다. 그나마 무역수지는 1980년 내수침체로 경제 가동률 위축과 원유 수입 물량이 줄면서 1979년 52억8,000만달러 적자에서 1980년 47억9,000만달러로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지금 상황은 어떨까. 지난해 2.5%였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올해에는 4%대를 기록할 것이 분명하고 하반기에는 6%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과거에 비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미약하지만 연간 상승폭이 두배가량 될 수 있다는 점은 비슷하다 할 수 있겠다. 성장률 역시 지난해 5.0%에서 올해에는 4.1%까지 내려가고 아예 3%대를 찍을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편 1ㆍ2차 오일쇼크와 최근의 유가 급등은 특징에서도 사뭇 다르다. 1차 오일쇼크는 아랍권의 자원 무기화의 특징을 보여준다. 아랍권은 석유를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무기로 부상시킨 뒤 단기간에 공급을 줄여 전세계를 충격의 도가니 속에 빠뜨렸다. 물론 당시까지 석유가 자원무기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비국 역시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고 1974년에 와서야 국제에너지기구(IEA)를 설립하는 모습을 보였다. 2차 오일쇼크는 석유가 자원무기가 된다는 것을 체감한 OPEC이 유가를 올리면서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했고 동시에 1차 오일쇼크를 겪었음에도 소비국은 여전히 비축량 확장 등 대응이 부족해 발생한 특징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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