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12월 16일] 北·美관계와 한국 정부의 선택

북한과 미국의 관계에는 하나의 법칙이 있다. 미국에서 정권교체가 발생하면 신임 행정부는 대북정책 검토의 시간을 가지면서 북한과의 대화를 주저한다. 그러면 북한은 긴장을 고조시킨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북미는 대화를 재개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정답'을 만들어내곤 한다. 그러나 정권교체에 임박해 만들어진 그 정답은 다시금 무용지물이 된다. 지난 1994년 제네바합의, 2000년 북미 공동 코뮈니케, 2005년 9ㆍ19 공동성명, 2007년 2ㆍ13 합의와 10ㆍ3 합의 등은 정답이었지만 휴지조각이 됐다. 北·美 의제 우선순위 설정 차이 북한은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출범한 후 북미관계 공백기인 올해 4월 로켓을 발사하고 5월에는 두 번째 핵실험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의 로켓 발사 직후 "안보와 존중의 길이 위협과 불법무기로 실현되지 않을 것"임을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북미는 10월 대화를 다시 시작했다. 다시금 법칙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10월 북미의 비공개 토론에서는 북미 간 모든 의제가 토론된 것처럼 보인다. 핵심의제는 비핵화를 관계 정상화, 경제 지원, 평화체제와 교환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최근 북한을 방문한 미국의 보즈워스 특사도 만나고자 한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 같은 의제를 논의했다고 한다. 보즈워스 특사는 이 교환의 방법으로 6자회담 재개와 2005년 9ㆍ19 공동성명의 완전한 이행에 북미가 '어느 정도 공통의 이해(some common understandings)'에 도달했음을 밝혔다. 북한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일련의 공동인식'이라는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북미 사이에 어떤 표현을 쓸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있었음을 추론하게 한다. 그러나 북미가 나열한 의제의 순서는 달랐다. 보즈워스 특사는 비핵화, 평화체제, 관계 정상화, 경제ㆍ에너지 지원의 순으로, 북한은 평화협정 체결, 관계 정상화, 경제 및 에네르기(에너지) 협조, 조선반도 비핵화 순으로 언급했다. 다시금 '정답'이 된 9ㆍ19 공동성명처럼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연계하는 것에 북미가 일정한 공통된 이해에 도달했지만 의제의 우선순위 설정에 차이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보즈워스 특사가 말한 '탐색대화'에서 '협상'으로 진전되려면 이 차이가 조정돼야 한다. 북미관계 법칙을 구성하는 또 다른 요소 가운데 하나는 북미대화가 순조롭게 진행될 때 이를 가로막는 방해물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2005년 9ㆍ19 공동성명 직후 미국 재무부가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를 동결해 6자회담이 지연된 것처럼 보즈워스 특사의 방북 직후 북한제 무기를 실은 수송기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1874호에 따라 태국에서 억류된 사건도 북미대화를 지연시킬 수 있다. 이 일에도 불구하고 북미대화가 계속된다면 북미관계의 법칙은 수정의 조짐을 보이게 될 것이다. 조율 실패땐 6자회담 좌초 우려 그러나 북미관계의 악순환이 작동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한국 정부의 선택이 중요하다. 한국 정부의 정책에서 북미가 논의하고 있는 평화체제라는 단어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 정부의 '새로운' 평화구상은 9ㆍ19 공동성명과 달리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연계가 아니라 비핵화 이후에야 비로소 평화가 달성되는 구조다. 북미대화 의제와 한국 정부 정책의 불일치다. 탈냉전ㆍ민주화 이후 한국 정부의 선택이 한반도 문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증대해왔다. 한국 정부가 비핵화와 평화체제가 연계되는 방식의 논의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재개된 6자회담은 좌초될 수도 있다. 한국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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