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가 동반 침체에 빠졌을 때는 경기 부양적인 통화·재정 정책에 공동전선을 형성했지만 최근 '선진국 선방-신흥국 부진'이라는 불균형 성장이 가시화되자 '마이웨이'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미 2~3년 전부터 환율방어, 보호무역주의 등에 대해 이견이 속출하면서 국제 공조체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23일까지 호주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장 회의는 이러한 균열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선진국은 통화정책을 신중하게 수행하고 신흥국과도 소통해야 한다"는 문구를 공동 코뮈니케 초안에 넣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판을 깨지 않으려는 수사에 불과하다. 특히 내년 하반기 기준금리 인상 등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출구전략이 본격화할 경우 글로벌 공조 붕괴는 시간문제로 예상된다.
◇난타전 치고받은 선진국-신흥국=이번 회의를 앞두고 미국·영국·독일 등 선진국 그룹과 브라질·러시아·인도 등 신흥국 그룹은 한치의 양보도 없는 상호비방전을 벌였다.
20일 조지 오즈번 영국 재무장관은 "멕시코·페루·말레이시아 등은 최근 상대적으로 충격을 덜 받고 있다"며 "일부 신흥국의 금융 불안은 미국과 영국의 통화정책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국내 문제 탓"이라고 맹비난했다.
제이컵 루 미국 재무장관도 전날 "시드니 회의에서는 각국이 강한 경제를 위해 제각각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제 갈 길을 가자는 것이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도 지난주 신흥국 위기가 통화 정책 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임을 재확인했다. 독일 역시 18일 연준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에 대해 지지 의사를 밝혔다.
신흥국은 발끈했다. 옐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는 21일 "이번 회의는 물론 올해 내내 논의해야 할 어젠다는 신흥시장 불안과 국제공조 복원"이라며 "연준 테이퍼링으로 러시아는 외국인 자금 유출과 루블화 가치 하락, 성장률 둔화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날 알레산드레 톰비니 브라질 중앙은행 총재와 차티브 바스리 인도네시아 재무장관도 "연준은 융통성을 갖고 조심스럽게 통화정책을 수행해야 한다"고 비난했다.
◇각국, 마이웨이 가속화='신흥국과 소통 강화' 등 어렵사리 합의가 예상되는 공동 코뮈니케 초안도 실효성이 의심된다. 미국·영국 중앙은행조차 실업률이 목표치에 도달하면서 내부적으로 새 포워드가이던스(선제안내) 마련에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훙 트란 국제금융협회 이사는 "현재 (선진국의) 포워드가이던스 개념 전반이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의장국인 호주의 조 호키 재무장관이 제안대로 공조 복원을 위해 글로벌 성장 목표치를 설정하는 방안도 각국 사정이 달라 무의미하다는 게 중론이다. 또 국제통화기금(IMF)은 선진국 출구전략에 대비해 신흥국이 인프라 투자, 노동시장 개혁, 내수 부양 등을 공조하자고 제안하지만 상당수 신흥국이 정치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개혁 조치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더구나 국제금융기구 간에도 신흥국 위기의 해법이 엇갈리고 있다. 호세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은 21일 "테이퍼링은 정책 정상화의 과정"이라며 연준 입장을 옹호했다. 세계은행도 최근 "선진국으로 순유입된 자금 규모가 지난해 1조780억달러로 올해 1조650억달러로 줄었다"며 "신흥국 위기는 연준 테이퍼링 탓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는 "선진국 중앙은행은 테이퍼링 때 자국은 물론 다른 신흥국도 고려해야 한다"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 입장과 대비된다.
이처럼 국제공조를 통한 위기 해결이 물 건너가면서 각국 각개 약진도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이날 IMF는 인도에 대해 "출구전략으로 환율이 또다시 요동칠 경우에 대비해 금리를 더 올리고 환 스와프 계정도 개방하라"고 권고했다. 각국이 알아서 위기에 대비하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