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1월 8일] 내수시장 새롭게 보기

수년 전 미국 연수 때 얘기다. 처음 미국에 도착해 타본 차가 도요타의 캠리였다. 현지의 한인 교회 목사님 차였는데 20만마일(32만㎞) 이상 된 우리 기준으로는 '고물차'였다. 그러나 목사님은 캠리에 대한 신뢰가 대단했다. 20만마일을 달리는 동안 소모품 몇 개 말고는 고장난 곳이 없다는 자랑이었다. 앞으로 10만마일 이상은 거뜬히 뛸 수 있다는 장담도 이어졌다. 그런 캠리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너무 잘 팔려 역풍을 맞을 것을 우려해 도요타 스스로 한국 수출량을 조절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경제 패러다임 생산서 수요로 캠리가 왜 한국에 들어왔을까.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그중 하나는 현대차를 겨냥한 것이다. 글로벌 시장의 강자로 뛰어오른 현대차의 안방시장을 공략, 해외 마케팅을 약화시키려는 전략 아니겠냐는 해석이다. 현대차의 성공요인으로는 지속적인 품질경영 등이 있지만 내수시장에서의 충실한 수요층 역시 큰 배경이었다. 그동안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은 '생산'과 '수출(해외시장)'이었다. 어떻게 하면 저비용으로 좋은 제품을 만들어 해외시장에 내다 팔까 하는 고민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국내시장은 수출을 위한 '종속시장'으로, 임금은 생산비를 맞추기 위한 '요소비용'차원에서 취급됐다. 하지만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로 내수시장의 중요성이 다시금 부각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지금까지 한국 경제는 선방했다. 각국이 재정을 대규모로 투입하면서 경기부양에 나선 덕에 해외시장이 버텨줬고 위기로 외국의 경쟁기업들이 흔들리면서 우리 기업들은 더욱 빛이 났다. 하지만 올해에도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지난해 각국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면서 올해는 재정투입 여력이 급속히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오히려 각국의 재정적자 문제가 새로운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해외의 민간 소비와 투자 문제도 만만치 않다. 미국은 막대한 재정적자 문제뿐 아니라 개인부채 문제로 과거와 같은 '세계의 소비시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내수시장의 중요성 역시 다시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내수를 키우기 위해서는 경제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동안 생산과 수출 위주의 성장을 하는 동안 국내시장은 단순히 '수출의 종속시장'으로서의 역할에 그쳤다. 국내 근로자들의 임금 역시 요소비용 차원에서 취급됐다. 하지만 이제 우리 경제를 보는 패러다임을 '생산'의 관점에서 '수요'의 관점으로 개편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잘 만들기만 하면 수출을 통해 팔리는 상황이었으나 이제는 '수요와 시장'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임금과 근로형태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 임금을 단순히 수출가격을 낮출 수 있는 '요소비용'이 아니라 내수를 일으킬 수 있는 적극적인 '수요요인'으로 볼 필요가 있다. 근로자들의 근로행태도 과거처럼 노동시간을 많이 투입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패러다임에서 내수 창출을 고려해 휴가를 늘리고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창의적인 노동을 중시하는 패턴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 임금·근로형태도 수요창출 요인 이 같은 패러다임의 변화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유지ㆍ발전을 위해서도 긴요하다. 현재와 같은 대기업 중심의 수출주도형 경제로는 최대 현안인 일자리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대기업들이 투자를 한다 해도 갈수록 높이지는 생산성 때문에 '고용 없는 투자'가 되고 이마저도 국내 투자보다는 해외투자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결국 '유효수요 부족시대'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가가 앞으로 화두가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국내 노동시장 문제도, 공공투자 문제도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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