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과 세상] 피지배 백성 어떻게 시민의식 가졌나

■ 인민의 탄생 (송호근 지음, 민음사 펴냄)


조선 시대 500년 역사 속에서 피지배 계급에 불과했던 백성이 어떻게 근대 사회로 넘어오면서 주체적인 시민 의식을 갖는 인민으로 진화하게 됐을까. 대표적인 진보 사회학자인 저자는 이러한 의문을 갖고 한반도에서 인민의 탄생 과정을 탐구했다. "1970년대 산업화 세대의 일원으로 과거와의 비정한 단절을 통해 서양산 사회과학으로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자기 고백으로 집필을 시작한 저자는 "성리학을 기반으로 500년간 강력한 통치 체제를 유지했던 조선이 글자를 읽고 쓸 줄 아는 새로운 인민의 출현으로 인해 무너지게 됐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조선은 지식, 종교, 정치가 삼위일체를 이루며 정종일치(政宗一致)의 정도가 높은 사회였고 이를 강력한 관료제 통제로 무장하고 사대부 계급이 이를 완벽하게 장악했다는 점에서 세계 어느 체제와도 비교할 수 없는 단단한 사회 구조를 유지했다. 지식ㆍ종교ㆍ정치의 삼위일체를 관할했던 지배적인 사상은 성리학이었으며 그것의 종교적 구현체가 바로 유교였기 때문에 조선은 유교 국가의 이상을 내세우며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피지배 계급인 백성이 주체적인 시민 의식을 지닌 인민으로 진화될 수 있었던 계기는 분명히 있었다. 저자는 훈민정음의 존재를 답으로 내놓는다. 당초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시한 것은 성리학 경전의 내용을 백성들에게 보급하려는 정치적 의도였지만 문자 수단을 갖게 된 인민이 지배 계급과 다른 인식 공간을 갖게 될지는 세종도 예상치 못했다. 사대부들이 그들의 언어인 한자를 통해 그들의 역사를 써나갔다면 인민(문해인민)은 언문을 통해 독자적인 사상을 갖게 됐던 것이다. 저자는 "인민은 통치의 객체이자 교화의 대상이라는 조선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명제가 유효성을 상실하고, 인민이 역사의 객체에서 주체가 되는 순간 중세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강조한다. 송 교수는 2년 뒤 후속편인 '근대에 관한 연구'를 통해 '시민의 탄생과 근대'란 주제로 심층적인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2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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