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마스터스의 고장,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 김운용의 세계 100대 코스 탐방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사람들은 돈과 권력, 명예를 중요시한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가지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여기서 하나 빠진 것이 있다. 바로 아름다운 추억이다. 그럼 골퍼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이란무엇일까? 아마 뜻 깊은 라운드일 것이다. 특히 뜻 깊은 추억을 위해라운드하고 싶은 전 세계 골프장 중 하나를 꼽으라면 대부분 바로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이라고 답할 것이다. 이는 필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인브릿지에 있는 지난 11년 동안 CJ 나인브릿지 클래식과 월드클럽챔피언십 등 여러 국제행사를 치렀고 또 그 사이 많은 외국인들과 교류를 해왔다. 그 덕에 세계 최고골프장인 파인밸리에서부터 골프의 발상지라는 세인트앤드루스까지 돌아봤지만 마음 한편에 늘 아쉬움이 있었다. 바로 오거스타 때문이었다. 여기가 바로 오거스타!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에 위치한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의 탄생은 193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거스타의 창시자는 아마추어 골퍼인 바비 존스와 그의 친구 클리포트 로버츠다. 정상의 자리에 선 존스는 은퇴 후 세계 최고의 골프장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고 설계가인 앨리스터 맥켄지와 손을 잡고 1933년 오거스타를 개장했다. 이후 오거스타는 스노비클럽(snobbyclub)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스노비클럽은 아주 폐쇄적인 회원제 골프장을 일컫는 말이다. 회원이 동반하지 않으면 골프장에 들어갈 수도 없고 당연히 라운드를 할 수도 없다. 그래서 필자는 오거스타와 굴곡이 많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흔히 말하는 삼세 번 만에 라운드가 이루어져서다. 여러 사정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던 필자는 2010년, 세 번째 방문 때 마침내 라운드가 성사됐다. 오거스타에서 라운드를 하지 않고서는 전 세계 골프장을 두루두루 둘러봤다고 할 수 없기에 그 감회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일류와 삼류 골프장의 차이 호텔이나 숙박시설은 누가 먼저 도착하던지 간에 먼저 체크인을 하면 되지만 오거스타는 회원이 먼저 도착하지 않으면 정문조차도 통과할 수 없다. 정문에 도착한 뒤 여권을 보여주자 회원인 찰리가 카트를 끌고 나왔다. 찰리는 이번 라운드를 주선해준 고든 댈글리시(R&A 멤버, 세계 100대 코스선정위원)의 지인으로 그의 아버지는 오거스타의 16번째 멤버다. 원래 가족회원을 받지 않지만 1999년부터 가족도 회원이 될 수 있게 됐다. 20동의 카티지(cottage)에 도착한 뒤 짐을 풀고 찰리와 함께 코스를 둘러봤다. 저녁 만찬을 위해 클럽하우스로 들어갈 때 찰리는 회원전용 재킷을 입고필자를 맞이했다. 이는 오거스타의 전통으로 회원전용 재킷은 1949년부터 만들어졌다. 그리고 방문객도 클럽하우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정장차림을 갖춰야 한다. 저녁을 먹으며 양용은이나 최경주, 앤서니 김 등 한국 골퍼들에 대한 이야기가 즐겁게 오갔다. 클럽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던 필자는 여러 가지 질문을 메모해갔는데, 먼저 회원이 몇 명이냐고 물으니 찰리는 “물위에 떠 있는 오리의 모습은 볼 수 있지만 물장구치는 오리의 발은 볼 수 없다. 그처럼 수면 위는 볼 수 있지만 그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은 볼 수 없는 곳이 오거스타다. 그런 질문보다 내일의 즐거운 골프를 생각했으면 좋겠다”라고 대답했다. 주주회원들로 구성되어 있는 오거스타는 이사장을 회원 중에서 선출해 운영한다. 회원은 모두 남자인데 1991년 잭 스태픈이 여자도 회원이 될 수 있도록 만들었지만 많은 회원의 항의로 9개월 만에 취소됐다. 여전히 여자회원은 없지만 올해 1월15일부터 2월28일까지는 부부초청 라운드에 한해 여자도 라운드를 할 수 있도록 개정됐다. 클럽은 매년 6회의 골프 이벤트를 여는데 마스터스가 개최되기 한 달 전 회원들이 모두 모이는 ‘잼블리 메인이벤트’라는 가장 큰 행사가 개최된다. 또한 마스터스 주간에는 회원들이 대회의 운영과 진행에 적극 참여한다. 이런 행사와 문화를 통해 회원들은 끊임없이 커뮤니티를 다지고 네트워크를 넓혀나간다. 더군다나 골프장의 중요한 안건에 대한 제정도 모두 회원들의 의견을 통해 결정한다. 회원들은 연회비를 1만 달러씩 내며 이 비용은 클럽의 품격을 유지하는데 사용된다. 클럽하우스 내부에는 클럽의 전통과 역사 그리고 긍지를 보여주는 전시물들이 많다. 회원 전용 식당의 정면에는 바비 존스의 그랜드슬램 달성 클럽, 마스터스 역대 챔피언들이 사용한 클럽이 전시되어 있다. 2층에는 마스터스 우승자만을 위한 개인전용 락커가 마련되어 있는데 그 맞은편은 챔피언들이 사용할 수 있는 휴게실이다. 옆에는 마스터스에 참가하는 아마추어선수들을 위한 전용 락커와 숙소(크로우즈 네스트)가 있다. 올해 마스터스에 참가하는 5명의 아마추어 선수명단에는 한국인인 안병훈(US 아마추어 챔피언)과 한창원(아시아 아마추어챔피언) 등 2명이 포함됐다. 어린 한국선수들이 이 꿈의 무대를 뛴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클럽하우스 지하는 와인셀러로 사용된다. 1906년산 와인부터 최근 생산된 와인까지 약1만4,000병을 보관해 회원의 기호에 맞게 어떤 와인이든 제공할 수 있다. 와인들의 가치를 환산하면 500만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이날 클럽의 여러 문화들을 체험하면서 일류골프장과 삼류골프장을 결정짓는 차이가 뭔지 확실히 알게 됐다. 그 차이는 좋은 문화를 가지고 있느냐와 없느냐는 점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일류골프장을 위한 필수 조건이 바로 좋은 회원이었다. 유리알 그린에 놀아난 아름다운 추억 드디어 필자를 애타게 했던 오거스타의 라운드가 시작됐다. 마스터스에 출전한 선수 마냥 의기양양한 미소를 띠고 1번홀의 멤버스티(오거스타에는 티박스가 멤버스티와 마스터스티 두 개뿐이다)에 발을 디뎠다. 개장 당시 오거스타의 코스 길이는 7,030야드였다. 현재는 7,435야드로 길이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이는 미 PGA 투어 메이저 대회의 포문을 여는 마스터스를 위해 매년 코스를 다듬은 결과다. 그래서 오거스타는 이듬해 마스터스를 위해 5월부터 6개월간의 긴 휴장에 들어간다. 또한 각 홀에는 명칭이 있는데 홀 주변에 자생하던 대표적인 식물의 이름에서 따왔다. 오거스타는 ‘유리알 그린’으로 유명하다. 국내골프장은 일반적으로 그린스피드를 8.5~9피트로 유지하지만 오거스타는 평소 이보다 빠른 11피드의 스피드로 꾸준히 관리한다. 마스터스 때는 무려 13~15피트라고 한다. 야구에서 수비하기 까다로운 3루수를 핫코너라 부른다. 오거스타에도 핫코너가 있는데 11번홀에서 13번홀에 이르는 ‘아멘코너’가 그런 곳이다. SI의 기자였던 허버트 워렌이 1958년 아멘코너라고 표현하면서 시작한 명칭이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라운드를 끝마치고 나서 든 생각은 코스 레이아웃이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지 그린 스피드가 너무 빨라 까다로운데다 언듈레이션이 심해 상당히 곤욕스러웠다. 이런 빠른 그린은 뛰어난 관리 시스템이 있기에 가능하다. 산소를 공급하는 서브 에어 시스템과 그린이 튀지 않고 잔디가 어떤 날씨에도 건강하게 자라도록 돕는 히팅&쿨링 시스템 덕분이다. 이 시스템들은 전체 18홀 중 그늘이 지는 4개 홀에 적용되어있다. 오거스타의 오랜 전통과 문화, 첨단기술을 벤치마킹한 우리나라의 해슬리 나인브릿지가 18홀 그린 전부에 이 시스템을 적용했다. 18번홀 그린을 나서며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오늘은 내가 유리알그린에 제대로 놀아났구나.’ 하지만 그 순간부터 이날의 라운드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아주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다음 방문에는 분명 훨씬 좋은 스코어를 기록할 것이라 여겨졌다. 그러자 아쉬움이 더욱 크게 밀려들었다. 언제 그런 기회가 다시 올 수 있을까란 막연한 안타까움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들이 만든 오랜 전통과 문화, 그리고 골퍼 스스로 지켜나가는 매너와 에티켓에 대한 부러움 때문이기도 했다. 글·사진 김운용(CJ나인브릿지 대표, 세계 100대 코스 선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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