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5월 11일] <1693> 비잔틴 제국


콘스탄티누스의 황제 즉위 25주년 기념축제가 절정에 이른 330년 5월11일, 비잔티움(지금의 이스탄불) 성 이레네 성당. 미사에 참석한 황제가 도시 이름을 콘스탄티노플로 바꾸고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한다고 선언했다. 동로마제국, 즉 비잔틴제국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이다. 수도를 옮긴 것은 새로운 구심점을 원했기 때문. 3세기 후반부터 4~6명의 황제가 난립하는 혼란을 친아들까지 죽여가며 수습하고 1인 체제를 구축한 마당에 새 출발의 상징이 필요했다. 로마를 비롯한 이탈리아 전역에 말라리아가 창궐했으며 동부의 경제력이 로마가 위치한 서부를 능가했다는 점도 천도의 요인으로 꼽힌다. 콘스탄티누스는 개선식 기능 정도만 남은 로마를 버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전제 권력을 꿈꾸며 기독교에 호의적이던 그는 공화정에 대한 향수가 강하고 다신교 숭배사상이 짙은 로마가 싫었다. 당초 천도 후보지는 예루살렘과 알렉산드리아, 트로이 평원이었으나 비잔티움으로 정해졌다. 바다를 끼고 있어 방어에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선정이 뛰어난 덕분인지 제국은 숱한 위기를 극복하며 오스만튀르크에 점령될 때까지 1,123년 18일을 존속했다. 비잔틴 동방정교회의 종교적ㆍ문화적 유산은 러시아 탄생도 이끌었다. 망할 때까지 스스로를 로마라고 여겼던 비잔틴은 서유럽을 페르시아와 이슬람으로부터 지킨 방파제이자 고대 그리스ㆍ로마 문명의 보관창고였다. 르네상스도 콘스탄티노플 함락(1453년) 이후 피란 온 비잔틴 학자들에 의해 지펴졌다. 비잔틴의 화폐경제와 교역을 통해 발전시킨 비단ㆍ섬유산업은 서유럽으로 이식돼 산업발달로 이어졌다. 비잔틴제국을 떠받쳤던 그리스 문명의 저력이 다시금 발현되면 좋겠다. 갈구하나니 그리스의 재정난으로 촉발된 금융위기도 하루빨리 진정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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