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는 본지와의 신년 특별인터뷰에서 유독 중앙정부의 역할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강한 목소리로 정부 권한의 축소ㆍ분산 입장을 피력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새 정부는 국방, 외교, 치안, 생명, 재산 보호 등 최소한의 기능만 해야 한다”며 그간 정부의 지속적인 기능 확대가 불러온 사회ㆍ경제적 비효율과 이로 인한 국민적 ‘피로감’이 현재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비대해진 정부 조직을 축소하고 그 역할을 지방정부와 시장에 분산시키지 않고서는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 많은 것을 놓치게 될 것”이라며 새 정부가 적절한 정부 역할론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사실 정부 역할론은 새 정부가 출범할 즈음 어김없이 ‘큰 정부’ ‘작은 정부’라는 이름으로 수면 위로 부상하는 대표적 논란 중 하나. 이와 관련, 세계적으로도 크게는 19세기 야경국가론에서 20세기 행정국가론, 그리고 20세기 후반 신자유주의론에 이르기까지 정부 역할을 둘러싼 다양한 견해가 있었다.
그만큼 급변하는 시대 상황에 걸맞은 정부의 역할 변화는 국가의 경쟁력과 생존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임을 뜻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송 명예교수는 언뜻 ‘야경국가론’에 가까울 만큼 정부의 역할 축소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설파했다. 그는 “작고 효율적인 정부의 문제는 일본과 미국도 최근에서야 관심을 가지며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정부가 모든 것으로 혼자 다 해결하려는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비유를 빌리자면 세상 만사는 정부가 ‘혼자’ 할 수 있는 일과 정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일로 단순 분류된다. 그런데 방만한 공기업에서 혼란스러운 입시ㆍ교육정책에 이르기까지 주요 경제ㆍ사회적 문제가 대부분 정부가 ‘함께’가 아닌 ‘혼자’의 지위에만 집착하면서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정부가 주도하는 각종 개발사업에는 정작 시장의 핵심 주체인 민간기업이 소외돼 있고 입시정책은 늘 학생과 학부모를 정책의 시험대 위에 올려놓은 결과만 낳았다”고 비판했다.
송 명예교수는 특히 ‘지방분권화’라는 시대적 상황에서도 여전히 핵심 권한이 모두 중앙에 집중돼 있어 한국 사회의 선진화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서초구만 보더라도 현재 인구가 50만명으로 룩셈부르크보다 더 많다”며 “중앙정부가 선진화를 위한 큰 비전과 전략만 정해주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권한을 지방정부에 대폭 넘겨준다면 서초구는 룩셈부르크와, 대구는 뉴질랜드와, 부산ㆍ경남은 스위스와 경쟁하며 ‘맞짱’을 뜰 수 있는 발전적 구도가 형성되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교육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송 명예교수는 “스위스의 경우 중앙정부에 별도의 교육부처가 조직돼 있지 않으며 미국 역시 연방 차원의 교육부가 따로 있지 않고 개별 주(洲)에 정책권한이 이관돼 있다”며 “중앙은 창조적 교육을 담당하는 부서 한 곳만 있으면 될 뿐 지금과 같은 막대한 정책권한을 기반으로 획일화된 비창조적 교육정책을 펼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세제 개혁에 대한 정부 철학에도 그는 뼈 아픈 일침을 가했다. 그는 정부의 세금정책이 국민의 ‘자산’을 키우는 데 최우선의 정책 목표를 설정해야 함에도 오히려 참여정부에 이르는 그간의 정부 정책이 ‘벌금’과 같은 성격으로 변질돼왔다고 지적했다.
송 명예교수는 “국민들이 꾸준히 아파트 평수를 늘려 집을 옮기면 세금을 면제해 자산 형성을 도와야 함에도 되레 투기를 이유로 벌금처럼 세금을 매기고 있다”며 “사회적 분배를 이유로 세금의 필요성이 더욱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기는 하지만 분배 역시 국민 자산이 커져야 가능한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그는 “세금의 필요성에 대한 정부의 욕구는 점점 비대해져가는 정부 조직과도 무관하지 않다”며 “공무원 조직의 감축을 통해 세금의 필요성도 함께 줄여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