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산책] 사라진 객석

안호상 <예술의 전당 공연사업국장>

예술의 전당 음악당이 5개월의 보수공사를 마쳤다. 원로 지휘자 정재동과 코리안 심포니의 부르크너 심포니로 개막을 알린 후 세계적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 독주회, 에셴바흐 지휘의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 등의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홀을 다시 찾는 이들에게 앞이 탁 트인 로비가 친근한 첫인상을 주는 모양이다. 안에서는 우면산의 자연이 한눈에 들어오고 밖에서는 시원한 여름 밤공기를 마시며 로비의 관객들을 친구처럼 가깝게 느끼게 해주니 말이다. 음악당을 리노베이션하면서 가장 신경이 쓰였던 일 중 하나는 기존의 음향 조건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세계적인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가 예술의 전당 음악당을 ‘거대한 악기’라고 호평했던 것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국내외의 정상급 아티스트들 대다수는 연주를 마치면서 언제나 음악당의 음향에 대해서는 엄지손가락을 높이 치켜세워줬기 때문이다. 극장의 음향 조건은 건축적인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번에 음악당은 의자를 바꾸면서 마감소재도 바뀌었고 벽체와 천장의 마감도 변화됐다. 바뀌는 소재들의 계수화된 음향 측정치는 만족스러웠지만 과연 실제 소리 역시 그러할지 염려됐던 것이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 많은 전문가들은 음향적인 성공을 ‘행운’이라고 표현했었는데 17년 만의 공사의 결과도 그 이상 혹은 적어도 그 정도의 평점을 받고 있는 것 같다. 또 한번의 행운을 얻은 셈이다. 극장의 의자가 아무리 편안하고 홀의 로비가 시원하다고 한들 자신의 연주 소리가 깨지고 모호해지는 극장에서 연주하고 싶어 하는 음악가가 있겠는가. 극장 관계자로서 음향만큼이나 바뀌지 않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 것이 있다면 좌석 수일 것이다.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좌석으로 디자인돼 최종적으로 나온 콘서트 홀의 객석 수는 과거보다 73석이 줄어 2,523석이 됐다. 무엇보다 전객석의 폭을 넓힌 것이 객석 수 감소의 가장 큰 이유였다. 관객의 편의는 살리면서도 어떻게 든 한 좌석이라도 줄이지 않으려고 오히려 통로를 최대한 이용해서 더 늘릴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하던 입장에서 73석을 줄이기로 하는 일은 무척 어려운 과정이었다. 그런데 20년 전 음악당을 설계할 때 논의한 객석 수는 1,800석에서 2,600석이었다. 그 폭이 800석이나 됐으니 참 과감했던 시절이다. 얼마 전 필자는 30년 만에 복원되는 명동 국립극장 객석 구조를 논의하는 자리에 참석해 적잖이 흥분한 적이 있다. 3층 객석을 유지하면 최대 600석까지의 좌석이 가능한데 이를 2층짜리 400여석 규모로 줄이자는 의견이 강력히 대두됐다. 이유인 즉 우리 연극 현실이 그 정도의 객석도 무리라는 점과 3층 객석은 연기자의 대사 전달이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염원하던 연극 전용의 ‘국립’극장을 복원한다면서 진정 관객들이 환호하는 작품을 과연 무대에 올리겠다는 생각이 있는지 의심까지 들었다. 연중 그렇다고 하지는 않더라도 일년에 한두번이라도 있을 좋은 연극, 600석의 객석이 터져나갈 수 있는 작품이 경제적인 이유, 객석 규모 때문에 또 다른 극장을 찾아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거의 상상하지 않는 얘기였다. 우리 음악당에 줄어드는 객석을 못내 걱정하던 참이기도 했지만 그렇게 된다면 수백억원을 들여 어렵게 다시 찾은 극장이 연극인들이나 일반 관객들에게 꼭 보고 싶은 연극이 올라가는 소중한 예술 공간이기보다 그저 과거를 추억하는 장소 정도로 여겨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져서 더욱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다. 물론 재정적으로 100% 자립하는 순수 예술이나 극장은 이 세상에 없다. 관객의 눈과 귀는 높아지지만 베토벤 합창 교향곡을 연주하는 인원을 축소할 수도 없고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두명의 배우로 끝낼 수는 없으니 제작의 비용은 자꾸 늘어만 간다. 기획자들은 음향과 객석 수 사이에서 고민도 하지만 결국 더 좋은 작품을 올리기 위해 더 큰 극장을 찾아 나선다. 극장의 명성은 완벽한 음향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무대가 전달하는 객석에서 시작되는 감동의 연쇄반응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라진 음악당의 73석을 아쉬워하는 것은 그만큼의 관객, 그만큼의 경제적 수익이 더 나은 예술로 되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20년 전 인심 좋게 800석을 늘였다 줄였다 하던 날을 오늘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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