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에서 추방된 한국 외교관(국가정보원 직원) 전모(서기관)씨는 무아마르 알 카다피(68) 국가원수의 후계 세습과 관련한 첩보활동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는 29일 외교 소식통을 인용, 추방된 외교관이 최근 카다피의 차남을 대신해 유력한 후계자로 부상하고 있는 4남측에 새로 줄을 대보려다 리비아의 오해를 산 것 같다고 보도했다.
현지 언론들도 "카다피의 국제원조기구와 그의 아들이 운영하는 조직에 대한 첩보활동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카다피가 운영하는 국제원조기구(GIFCA)는 차남이 책임자며, 4남은 다양한 정보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리비아 정부 “스파이 활동 인정하고 사과” 요구= 리비아 정부는 특히 전씨 문제가 불거진 직후인 지난달 중순 현지에 진출한 우리 종합상사ㆍ건설회사 주재원과 현지에 오래 거주한 교민들을 줄줄이 소환해 첩보활동을 도왔는지, 공사 수주 과정에서 뇌물을 주지 않았는지 등을 조사했다. 전씨가 아랍어를 몰라 정보원들과 접촉할 때 우리 기업 주재원 등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리비아에서 8년째 활동해온 선교사 구모씨가 성경을 현지어로 번역해 배포한 혐의로, 농장주 전모씨가 구씨를 도운 혐의로 구금된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 주재원은 “한국 업체들이 리비아 정치ㆍ경제 다 취합해서 대사관에 보고하지 않느냐고 캐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리비아 측은 외교관계 단절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바라지 않지만 전씨의 스파이 활동을 인정하고 사과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전씨가 수집한 정보의 내용과 형식 모두를 문제삼으며 미국ㆍ이스라엘에 정보를 넘겼을 것이라며 펄펄 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리비아를 방문했던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은 "나흘 동안 바그다디 마흐무디 리비아 총리를 3번 만났고 정보책임자 등도 만났다. 리비아측에 '많은 공사를 줬는데 미안하다. 외교관의 실수이지 간첩활동은 절대 아니다'고 해명했다"고 말했다. 국정원 대표단도 최근 리비아 정보 당국과 네 차례 만나 사태 수습을 시도했다.
현재 리비아에는 우리 건설업체 20곳이 진출해 92억 달러(약 11조원) 규모의 51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며 60억달러 규모의 공사를 따내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한ㆍ리비아 외교 마찰이 장기화되면 공사에 차질이 빚어지거나 수주전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며 걱정하고 있다. 다행히 이상득 의원은 "우리 기업들이 지장없이 활동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카다피 차남ㆍ4남 후계자 자리 경합= 한편 카다피의 후계자로는 차남 사이프 알 이슬람 카다피(38) 카다피재단 총수, 4남 무타심 빌라 카다피(36) 국가안보보좌관이 경합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남은 오스트리아와 영국에서 석ㆍ박사 학위를 받은 ‘후계 1순위’로 2003년 12월 리비아가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포기를 결정할 때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친(親)서방파로 '변화'를 자주 언급하고 부친이 작년 10월 공직이 없던 그에게 권력서열 2위 자리를 제안했지만 "통치체제가 투명하지 않다"며 거부하는 등 마찰을 빚고 있다.
반면 4남은 리비아군 중령 출신으로 보수 성향이며 공안ㆍ정보 분야를 틀어쥐고 있다. 보수층의 본능에 어필하면서 집권층의 지지를 쌓아가고 있으며 지난해 4월 리비아 국가안보보좌관 자격으로 미국을 공식 방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회담하면서 국제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