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을 몇일만 지연시켜줄 수없나요. 아들이면 괜찮지만 딸이면 호랑이띠잖아요』기묘년 신년이 가까와지면서 「범띠 딸」을 피하려는 일부 만삭임산부들의 출산지연 요청으로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전문의들에 따르면 12월들어 각급 병·의원 산부인과에는 출산예정일이 12월중순인 만삭의 임신부들이 아이를 내년에 낳을 수 없겠느냐는 문의를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 특히 일부 산부들의 경우 막무가내로 출산지연을 요청해오는 경우도 있어 의사들이 이를 설득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띠」에 관한 속설 때문에 빚어지고 있는 것. 남자 아이가 말이나 용·범띠로 태어나면 용맹하고 사나이 답다는 것이 통설인데 범띠의 경우 리더십이 강하고 용맹하며 왕성한 원기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여자가 범띠라면 억세고 참을성이 없으며 마구 설쳐 댄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결국 토끼같이 온순하고 예쁜 딸을 원하는 부모들의 바램이 출산일을 최대한 늦추려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포천중문의대 강남차병원 김동현교수는 『병원을 찾는 임산부중 출산지연 조치를 취해달라는 사람이 하루 평균 2~3명씩』이라며 『산모는 물론 태아 건강에도 좋지않다는 점을 설명하며 설득하고 있으나 일부 산모의 경우「관계없으니 무조건 늦게 낳게해달라」고 졸라 애를 먹는다』고 전했다.
金교수는 『특히 제왕절개 수술의 경험이 있는 여성이면서 여아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 임신부일수록 출산일을 조절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의사에 적극적인 요청까지는 아니더라도 출산지연을 위해 애쓰는 예비엄마들의 모습은 산부인과에 가보면 쉽게 찾아볼 수있다.
4일전 S의원에 입원한 金모(29)씨는 『태아가 여자같다는 생각이 들어 몸조리를 하는 중』이라면서 『가급적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날짜를 늦추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金씨는 출산예정일이 지난 25일이었지만 지금까지 잘 넘기고 있어 희망이 보인다고 즐거워했다.
결혼한지 2년6개월된 강남구 청담동 李모(31)씨는 『첫째가 남자여서 이번에는 여아를 낳고 싶다. 출산예정일을 3일 넘겼는데 컨디션을 잘 조절한다면 계획대로 될 것 같다』고 말했다. 李씨는 이왕이면 범띠보다 「토끼띠 옥동녀」가 낫지 않느냐면서 설사 아들이 태어나더라도 착하고 온순하게 자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국역술인협회 수석부회장 백운산씨는 이에대해 『범띠 여성의 경우 잘되는 사람은 아주 잘되는 반면 팔자가 기구한 운명도 많은 것이 특징』이라며 『토끼띠의 경우 평탄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산부인과 의사들은 무리하게 출산을 늦출 경우 태아나 산모건강에 치명적 이상을 부를 수 있다며 미신보다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통계청이 지난해 7월 내놓은 「통계로 본 여성의 삶」에 따르면 말-용-범띠 해에는 부모들이 여아출산을 기피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대구·경북지역에서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말띠해(90년)의 평균 출생성비(性比)는 116.6으로 여자 100명당 남자 116명이 출생, 최근10년(86~96년)의 평균 113.3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박상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