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국민이라는 화두(話頭)

내일모레는 설이다. 설은 오랜만에 가족 및 친지와 대화를 나눌 기회를 제공한다. 술자리에서는 물론 하다못해 고스톱을 치면서도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게 된다. 먹고사는 문제는 기본이고 교육ㆍ부동산 등 화제의 범위도 넓다. 그러나 매해 경험하듯 단골 메뉴는 역시 정치가 될 것이다. 더구나 이번 설은 총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지나간 신문을 다시 읽듯 모든 정치 현안이 도마에 오를 공산이 크다. 사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정치인이 존경받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다고 한국처럼 정치 수준이 낙제점을 넘어 국가발전의 최대 걸림돌이라는 지적을 받는 경우 역시 많지 않다. 정권이 바뀌면 반드시 보복이 가해졌기 때문인지 집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 `차 떼기`로 대변되는 부정부패, 지역감정을 이용한 바람몰이 등은 이제 고전에 속한다. 요즘에는 몇 개 더 늘었다. 얄팍한 포퓰리즘, 눈에 보이는 꼼수, 거짓말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정치야말로 사람이 하는 것이어서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특히 국민성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지금 한국의 정치 수준이 바닥권이라면 국민 역시 절반의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우리 국민은 불과 40여년 만에 국민소득을 200배 가까이 늘린, 그리고 반세기 남짓한 세월에 상당한 정도의 민주화를 일궈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고도성장기 이후 국민은 일종의 역린(逆鱗) 같은 존재가 됐다. 어지간해서는 국민성을 거론하거나 오류를 지적하기 어려우며, 표심을 두려워하는 정치인들의 경우 더욱 그렇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국민은 자신을 냉정히 되돌아봐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평소에는 정치 개혁을 부르짖다가도 투표장에서는 지연ㆍ학연ㆍ혈연을 찾는 이율배반성, 정치인에 손을 벌리는 유권자의 그 이중적 모습이 오늘 우리 국민의 자화상이다. 자본주의 사회라면 능력에 따라 결과에 차이가 나는데도 억지스러운 형평을 요구해 결국 하향 평준화만 양산하거나,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지식이래야 CD롬 한 장 분량밖에 안되는데도 죽기 살기로 과외에 달려드는 것 역시 한국병 중의 하나다. 특히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는 무한한 정을 베풀면서도 외부 세계에는 마음의 문을 닫는 `끼리 문화`는 글로벌시대의 공적 1호다. 이번 설에는 국민이 화두(話頭)가 되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선진국이 되려면 국민부터 선진국형 사고를 해야 한다. <정구영 국제부 차장 gy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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