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데스크 칼럼/8월 6일] 포퓰리즘이라고?

김형기 부국장 겸 금융부장

남의 나라 이야기좀 하자.


지금부터 400년쯤 전인 1601년 영국에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빈민법(Poor Law)을 제정했다.

이 법은 국가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상당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의 출발이었다.

그 직전까지 영국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1588년)한 후 전세계를 호령하는 대영제국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세계 각지의 식민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돈과 상품으로 국가는 물론 귀족들의 부가 넘쳐흘렀다.

세계제국 영국도 남들에게 드러내기 창피한 부분이 있었다. 풍요로운 런던의 뒷골목 음습한 곳을 차지하고 있는 빈민가. 땟국물에 절은 누더기옷을 걸친 가난뱅이들에 대해 당시 영국은 ‘게으른 인생의 결과물’쯤으로 이해했던 듯하다. 귀족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거지가 눈에 띄면 돈 몇 푼 적선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빈민에 대한 관심이나 지원은 사랑을 설파하는 교회나 돈많은 귀족들의 ‘호사스런 취미생활’쯤으로 이해됐을 뿐이다.

최근 MB정부의 ‘친서민 행보’를 놓고 정치권 일부와 재계가 상당히 불만스러운가 보다.


“정부가 왜 ‘기업간 거래관계’라는 시장원칙에 까지 개입하려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심지어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림대 김인영 교수의 기고문을 통해 “현 정부가 최근 강조하는 친서민 정책 기조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라고 단정적으로 규정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 친서민 정책을 기치로 대중을 기반으로 한 포퓰리즘에 기대 정치를 해보겠다는 의미”라고 폄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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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정부의 행보가 불안한가 보다.

여당의 나성린 의원은 “(정부가) 민주당과 포퓰리즘 경쟁을 벌이는 듯하다”고 까지 표현했다. 이한구 의원도 기업투자를 독려하는 행위 자체가 자본주의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시쳇말로 ‘민주당 정책인지, 한나라당 정책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재계나 정치권, 보수주의적 경제학자들의 지적에는 정부가 지금 같은 정책을 계속 이어간다면 시장의 질서를 무너뜨려 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고 종국에는 훨씬 커다란 사회비용을 치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경고도 담겨있다.

과연 그럴까.

햇살론이나, 보금자리론 등으로 한계생활에 내몰린 서민들을 구제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연이율 40%를 훌쩍 넘는 살인적인 고금리 대출로 인생이 구렁텅이에 처박힌 개인들의 불행은 끊이지 않고 있다. 아직도 은행창구에선 개인신용대출을 매몰차게 거절하거나, 금리를 기계적 잣대에 맞춰 편의대로 적용시켜도 ‘영원한 을(乙)’인 서민들은 끽소리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진행됐던 대기업과 중소 협력업체 간의 거래관행에 대한 메스를 ‘시장질서’의 훼손으로만 인식한다면 ‘힘의 논리’는 알아도 ‘저수지의 필요성’은 알지 못한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400년전 영국이 ‘게으르고 무능한 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빈민법을 제정한 것은 지금의 잣대로본다면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다. 하지만 좀 더 긴 역사의 안목으로 본다면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 대영제국에서 어떻게 항상 빈민이 발생하느냐는 구조적 모순에 대한 국가단위의 자아발견이다.

지금 정부가 진행하는 친서민대책은 과연 포퓰리즘인가.

정부가 진행하는 ‘친서민 대책’들의 면면은 한결같이 이미 수십년전부터 우리사회에서 “잘못됐다”고 비난했던 것들에 대한 ‘조정’이다. 큰 틀에서 살피면 바로 지금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나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자아발견’의 시기다. 차라리 재계나 금융계가 정부주도에 끌려가지 말고 적극적으로 앞서서 ‘저수지’를 만든다면 맘껏 커다란 박수를 보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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