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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드오트프로방스 동서로 뻗어
길이 25km 깊이 300m이상 달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협곡
생트마리산·생트크루아 호수 등
자연 그대로 깎아지른 절경 가득
강변 따라 車·도보여행도 가능해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별'의 배경지로 잘 알려진 남부 프랑스 프로방스(Provence). 프랑스 하면 으레 파리를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프랑스의 진면목을 알려면 프로방스를 둘러봐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프로방스는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원형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프랑스인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코트다쥐르의 세계적 휴양도시인 칸과 니스, 지중해 최대의 항구도시 마르세유, 고대 로마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아비뇽ㆍ오랑주ㆍ아를 등이 프로방스를 대표하는 도시들이다. 인상파 거장인 폴 세잔이 태어나고 활동한 엑상프로방스는 여전히 프로방스의 문화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프랑스의 속살을 들여다보려는 국내 배낭여행객들이 근래 들어 프로방스를 많이 찾지만 여행 가이드북에도 나와 있지 않은 숨은 명소가 있다. 바로 프랑스의 '그랜드캐니언'으로 불리는 베르동 협곡(Verdon Gorge)이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협곡으로 꼽히는 베르동 협곡은 프로방스의 6개 지역 중 하나인 알프드오트프로방스(Alpes de Haute Provence)에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길이가 대략 25㎞에 이르고 깊이는 300m 이상, 가장 깊은 곳은 700m나 된다. 미국 그랜드캐니언에 이어 두번째로 큰 규모다. 이 협곡은 터키석(Turquoiseㆍ청록색 광물) 빛깔의 강물에서 이름이 유래된 베르동강에 의해 지금의 특이한 지형이 형성됐다고 한다. 알프스가 융기한 후 솟아오른 산 사이를 비집고 수만년 동안 흐른 물살이 석회암을 침식시켜 높고 깊은 협곡을 만들어낸 것이다. 베르동 협곡은 남쪽이나 북쪽 어느 방향에서나 접근할 수 있다. 남쪽 입구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해발 500m 남짓한 생트마리산(Moustiers Sainte Marie)이 마치 협곡의 관문인 듯 우뚝 서 있다. 산 중턱에 수십여채가 모여 사는 마을이 형성돼 있고 두개의 산봉우리 사이에는 케이블카가 다닌다. 생트마리산 인근에 산재한 10여개의 캠핑장은 주말이나 휴가철에 캠핑카를 끌고 와 야영을 즐기는 이들로 북적댄다. 생트마리산을 지나 구절양장(九折羊腸)처럼 꼬불꼬불한 산길을 엉금엉금 오르다보면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면서 거대한 인공호수가 나타난다. 베르동강에 댐이 만들어지면서 생긴 생트크루아(Sainte Croix) 호수다. 프랑스에서 가장 크다는 이 호수는 거의 매일 물 색깔이 변해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사람들은 이곳 선착장에서 카약이나 카누를 빌려 협곡 상류로 거슬러올라가거나 호숫가에서 낚시를 즐긴다. 신기한 점은 강변이나 호숫가 주변에 있음 직한 음식점이나 상점을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는 것. 카약이나 카누ㆍ페달보트를 빌리는 선착장 하나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한국이라면 빠가사리매운탕집들이 즐비했을 텐데…." 일행 중 한명이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꿩 대신 닭'이라고 매운탕은 못 먹지만 토끼와 양고기는 먹을 수 있다. 호수 인근에 에긴느(Aiguines)라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이곳 식당에서는 토끼요리와 양구이요리를 내놓는다. 인구 100여명의 에긴느에는 중세시대에 지어진 작은 성도 있고 호텔과 식당도 여러 군데 있어 하룻밤 묵기 좋다. 호수와 협곡을 동시에 조망할 수도 있다. 생트크루아 호수에서부터 협곡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호수와 협곡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갈르타(Pont de Galetas) 다리에서 보면 양측의 물빛이 확연히 다르다. 호수 물은 코발트색에 가까운 데 반해 협곡물은 온통 청잣빛이다. 베르동강의 이름이 왜 터키석에서 유래했는지 알 만했다. 호수를 지나 협곡으로 들어서면 깎아지는 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탄성과 비명이 동시에 나온다. 멋진 경치에 한번 놀라고 도로 오른쪽 아래 까마득한 낭떠러지를 굽어보며 또 한번 소리 지른다. 베르동 협곡은 유럽인들에게는 무척 인기 있는 산악 휴양지로 암벽등반이나 래프팅ㆍ워터스키ㆍ패러글라이딩 등의 활동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특히 1,500개가 넘는 등반 코스가 있어 암벽등반가들에게 인기가 높다. 석회암 암벽은 침니(Chimneyㆍ암벽에 난 굴뚝 모양의 세로로 갈라진 큰 균열)가 많아 멀티피치 등산(Multi-pitch climbingㆍ밧줄걸이가 있는 곳에 하나 이상의 기착지가 있는 등산로를 따라 오르는 등반)에 적당하기 때문이다. 자전거일주 대회 '투르 드 프랑스'로 유명한 나라인 만큼 사이클 애호가들도 베르동 협곡을 즐겨 찾는다. 협곡을 통과하다 보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생트크루아 호수에서 협곡천 상류 쪽으로 차로 20여분가량 올라가다 보면 아르튀비 다리(Pont de l'Artuby)가 나온다. 2차대전 때 전쟁물자를 나르기 위해 만들어진 180m 높이의 이 다리는 현재 번지점프를 하는 곳으로 이용되고 있다. 베르동 협곡은 자동차뿐 아니라 협곡 아래 강변을 따라 도보여행도 가능하다. 하이킹과 산책 코스로 가장 이름난 지역은 탐험가 에드아흐 알프헤 마흐텔이 협곡의 지질조사를 하기 위해 들어갔다 개척한 '상티에 마르텔(Sentier Martelㆍ마르텔의 오솔길이라는 뜻)'이다. 약 15㎞의 강변을 따라 여행하는 데 12~13시간 정도 걸린다. 주마간산처럼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여행과 달리 오솔길 도보여행은 베르동 협곡의 진짜 속살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깊은 협곡 내의 부가적인 협곡인 '스틱스 듀 베르동(Styx du Verdon)'과 수많은 바위 아래 지하로 사라진 깔대기 모양의 협곡을 이르는 '엥뷔(Imbut)' 등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외국인 관광객들은 시간에 쫓겨 오솔길 도보여행은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라 아쉬움만 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