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테마가 있는 건축기행] 3. 최초의 고층단지 ‘여의도 시범아파트’

`너나 가지라는 섬`으로 불리던 여의도(汝矣島). 이 버려진 섬 한 귀퉁이에서 군사정권 당시 국내 건축사의 한 획을 긋는 새로운 실험이 시도되고 있었다. 지난 71년 국내 최초의 고층 단지로 지어진 여의도 시범아파트다. 이 아파트는 건립배경부터 다분히 정치적이었다. 권력자의 위업을 과시할 수 있는 건축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크렘린광장에 버금가는 지역을 만든다며 여의도종합개발계획을 수립했다. 버려졌던 땅 여의도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선 최첨단의 이미지를 갖춘 건축물이 요구됐다. 바로 고층의 대단지 아파트다. ◇무서운 아파트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로=이렇게 착공된 시범아파트의 규모는 높이 12~13층, 총 가구수 1,584가구에 달했다. 지금 보면 보통의 중층아파트에 불과하지만 건축 당시의 아파트들이 통상 5층 안팎이던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건축적 모험이었다. 더구나 준공 1년 여 전인 70년 4월에는 `와우 아파트 붕괴`라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일반인들의 뇌리 속에서 아파트는 위험한 건축물로 각인돼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시범아파트에 입주자가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선 고층 아파트가 매우 편리한 주거시설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했다. 더불어 모든 것이 새로워야 했다. 이런 배경하에 국내 최초로 중앙난방 방식이 도입됐다. 당시 금성사가 국내 처음으로 승객용 엘리베이터를 제작, 설치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또 `쿨데삭(cul-de-sac)`기법으로 단지를 배치해 차도와 보행도로를 분리했고, 단지 내엔 공원과 학교, 파출소, 쇼핑센터 등 각종 생활기반시설이 지어졌다. 국내 단지형 아파트의 원형을 제시한 셈. 부지면적 3만 여 평에 울창한 수목을 갖춘 최첨단 대규모 아파트. 주거문화의 신기원을 이룩한 이 아파트는 준공 후 수년간 서울의 가장 비싼 아파트로 자리잡았다. ◇쾌적한 고층아파트의 시작을 알렸다=여의도 시범아파트는 도시의 과밀개발 논란이 일고 있는 지금에 와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범아파트는 고층이어서 당시로선 스카이라인 훼손 등 주거환경을 나쁘게 할 수 있다는 우려를 샀다. 하지만 막상 준공 결과 주민들의 주거여건은 같은 개발밀도의 저층아파트보다 좋았다. 동간 거리가 넓어져 쾌적한 주거환경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최근의 재건축 밀도규제와 관련, 용적률 제한은 동일하게 규제하더라도 층수 규제는 유연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힌트를 주고 있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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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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