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산책] 홍길동전 재조명

황원갑 <소설가ㆍ한국풍류사연구회장>

올해는 ‘돈키호테’ 책이 나온 지 400주년이 되는 해다. 스페인의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가 돈키호테를 펴낸 것이 1605년. 스페인 정부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돈키호테 400주년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돈키호테를 주제로 한 소설낭독회를 비롯, 전시회ㆍ연주회ㆍ연극 등 여러 가지 행사를 벌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스페인 대사관이 있는 모든 나라에서도 각종 문화행사를 벌이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5월과 6월 두달 동안 서울ㆍ경기 지역에서 관련 소설낭독회ㆍ전시회ㆍ음악회ㆍ연극ㆍ발레ㆍ인형극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돈키호테는 세계문학 사상 최고의 소설로 꼽히는 고전 명작이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라는 인간상을 창조한 지 400년이나 지났지만 돈키호테의 매력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더불어 결코 늙는 법이 없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돈키호테는 무모한 사람, 저돌적인 사람,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등의 대명사처럼 굳어졌지만 정작 그의 매력은 다른 데에 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불 같은 성격, 그지없이 고상하고 순수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심미적 태도, 비록 언행언동은 참을 수 없이 우스꽝스럽지만 사물에 대한 단순 명쾌한 대응자세 등이 그의 매력인 것이다. 이제는 스페인의 국민문학에서 세계문학의 최고봉으로 우뚝 선 돈키호테의 출판 400주년을 맞아 다양하고 다채로운 기념행사가 펼쳐지는 것을 보고 소설가의 한사람으로서 축하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도 든다. 아울러 우리나라에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훌륭한 문학작품이 없는가 하는 점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홍길동전’이다. 홍길동전은 우리 고전소설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조선왕조의 풍운아요, 이단자인 허균이 지었다. 국문학사에 길이 빛나는 홍길동전은 최초의 한글소설이라는 점, 조선왕조의 병폐 중 하나였던 서얼 문제를 소재로 삼은 사회소설이라는 점, 홍길동이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오는 실존 인물인 실명소설이라는 점, 그리고 영웅소설이라는 점 등 몇 가지 기록과 특징을 지닌다. 홍길동전의 주인공 홍길동은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제도와 관습에 용감히 도전한 쾌남아요, 서민의 영웅이었다. 왕조사의 역적으로 처형당해 역사의 무덤에 깊이 묻혀버렸던 허균이 선구적 혁명가로 부활할 수 있었던 것도 오로지 홍길동전 덕분이었다. 홍길동전은 백성의 힘으로 부패한 정치, 부조리한 사회를 개혁하고 이상국을 세우려는 허균의 원대한 의지가 집약된 걸작이다. 현세의 홍길동, 현실의 활빈당 행수였던 허균은 원민들을 모아 자신의 활빈도를 만들려다가 귀양살이를 했고 귀양이 풀리자 적극적으로 현실과 부닥쳐 타협 아닌 적극적 대결을 벌이려고 했다. 하지만 허균은 역모죄로 광해군 10년(1618) 서소문 밖 형장에서 능지처참을 당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곳으로 떠나고 말았다. 그해 그의 나이 50이었다. 그러나 허균은 영원히 죽은 것이 아니었다. 왕조시대가 끝나고 백성이 주인이 된 새 세상이 되자 역사의 무덤에 깊이 잠들어 있던 풍운아 허균, 미완의 혁명가 허균은 서민 대중의 영웅 홍길동과 더불어 국문학사의 선구자로서 화려하게 부활했던 것이다. 마침 허균이 홍길동전을 쓴 것도 돈키호테가 나온 시기와 비슷한 약 400년 전이었다. 필자가 여러 사료를 분석ㆍ검토해본 결과 허균이 홍길동전을 쓴 것은 그가 함열에서 귀양살이를 마친 직후 부안 변산에 은거하던 광해군 4년(1612)께로 추정된다. 홍길동과 돈키호테는 어떤 점이 닮았고 어떤 면이 다른가. 홍길동은 시대를 앞서간 의적이고 돈키호테는 시대에 뒤떨어진 편력기사다. 그러나 이 두 주인공은 불의와 폭력을 응징하고 부조리한 시대에 맞서 싸우는 데는 형제처럼 닮았다. 다만 홍길동이 도술로써 탐관오리들을 징치하는 점에 반해 돈키호테의 무술실력은 언제나 비극적 결말로 끝난 희극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돈키호테 400주년을 맞아 우리 소설 홍길동전의 재조명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