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지난 1월 임직원 대상 새해 출발 조회에서 '중석몰촉(中石沒鏃)'을 강조했다. '돌에 화살이 깊이 박혔다'는 뜻의 이 고사성어는 '정신을 집중하면 어떤 어려운 일도 해낼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의 좌우명 '맨손가락으로 생나무를 뚫는다'와도 일맥상통한다. 이를 두고 업계 안팎에서는 올해만큼은 신 회장이 그간 보여온 과도한 신중함을 버리고 창업주의 경영 철학을 따라 강력한 도전에 나설 것으로 관측했다.
신 회장의 도전 의지는 곧바로 인터넷전문은행 출사표로 가시화됐다. 일찌감치 KT·우리은행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하며 유력 후보로 떠올랐고 심지어 신 회장이 직접 임원진을 이끌고 일본을 찾아가 관련 시장조사까지 벌이는 등 모처럼 신성장동력 확보에 대한 의지를 강력하게 드러냈다.
하지만 인터넷전문은행 예비 인가 신청을 불과 2주일 앞둔 15일 교보생명은 포기 의사를 밝혔다. 이번에도 교보생명은 해외 투자가 탓으로 돌렸다. 신 회장의 뜻과 달리 해외 투자가들의 반대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이 물거품이 됐다는 얘기다.
하지만 금융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고경영자의 의지가 확고했다면 해외 투자가들은 얼마든지 설득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교보생명의 컨소시엄 파트너였던 KT가 교보생명의 포기 선언 전에 새로운 파트너를 물색하고 심지어 경쟁사인 한화생명과 물밑접촉에 나섰던 점을 미뤄볼 때 KT가 이미 오래전에 교보생명의 신사업 의지 부족을 간파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또 교보생명이 "시중은행들의 인터넷뱅킹 강화 등 경쟁 심화"를 계획 철회의 이유로 내세웠지만 인터넷전문은행을 준비하는 다른 기업들은 "기존 인터넷뱅킹과 인터넷전문은행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의 예비 인가 가이드라인에서 드러나듯이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쟁력은 기존 은행들의 인터넷 사업과 차별화돼 있는 만큼 기존 은행들과의 경쟁을 사업 포기 이유로 내세우는 건 변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인터넷전문은행 진출 계획 철회가 교보생명 최고경영진 및 기업 신뢰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은행 인수를 막판에 포기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다른 기업들과 공동으로 추진하던 사업마저 뒤늦게 뒤집는 모습을 보였다"며 "앞으로 크든 작든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파트너를 구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