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문화산책] 함께 느끼는 카타르시스

손숙 연극인

막을 올리기 일주일 전부터 연출자의 걱정이 시작됐다. 경제가 나빠지면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영향을 받는 것이 공연예술이기 때문이다. ‘불경기로 대학로에 있는 극장도 텅텅 비어 있다.’ ‘더구나 문화의 불모지라는 강남에, 알려지지도 않은 새 극장에 관객이 오겠나….’ ‘이거 공연은 망신만 당하고 가난한 제작자 제작비도 안 나오면 어떻게 하느냐’ 등등. 배우가 작품만 생각해도 머리가 터질 지경인데 관객 걱정까지 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속상하다. 이런 식으로 연극을 계속하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배우는 공연 며칠 전이면 신경이 예민해져서 잘 먹지도 못하고 온갖 불길한 꿈까지 꾼다. 어느날은 막이 올랐는데 객석에 관객이 한명도 없는 꿈도 꾸고 관객은 꽉 찼는데 도무지 대사가 생각나지 않아 망신을 당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이런 저런 걱정거리로 잔뜩 예민해진 채로 공연 첫날을 맞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가만히 입속으로 ‘엄마’를 불러본다. 이번 연극 ‘어머니’를 연습하면서 나는 유난히도 어머니 생각을 많이 한다. 때로는 그분의 한 많은 인생을, 때로는 용서받지 못할 나의 불효를, 그리고 또 돌아가시기 전날의 그 평온하고 애기 같던 모습을. ‘엄마 이번 연극이 잘될 것 같아요. 도와주세요.’ 그리고 나서는 한결 편안해져 극장으로 갔다. 간단한 연습을 마치고 첫날 첫 공연을 위해 분장을 시작하려고 거울 앞에 앉으니 꼭 신인 때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한다. 객석 수는 적지만 극장은 위치가 좋고 쾌적하고 아름답다. ‘아름다운 극장 코엑스 아트홀’에서 첫날 첫 공연의 막이 오르고 무대 위에 선 나는 꽉 찬 관객들 앞에서 한 많은 세상을 살아온 어머니가 됐다. 2시간 동안을 배우와 관객은 한마음이 돼 울고 웃으며 절정에 도달했다. 기립박수를 받으며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깊이 고개 숙여 관객들에게 감사의 절을 올렸다. 이런 관객을 위해서라면 배우는 관객을 위해 죽어도 좋다는 생각까지 한다. 한 공간에서 무대 위의 배우와 객석이 함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예술. 이것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연극의 매력이다. 그래서 관객은 연극의 3대 요소이고 좋은 연극의 반은 관객이 만든다고 한다. 과언이 아니다. 좋은 공연을 보면 기립박수를 쳐라. 배우는 관객을 위해 죽을 수도 있고 관객들은 아마 쌓인 일의 스트레스를 모두 풀어버리고 다시 일상으로 가볍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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