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나 프랑스, 독일에서 경찰에게 쇠파이프를 휘둘렀다고 치자. 당장 감옥행이다.가스통에 불을 붙여 던진다면 총을 맞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잡히지 않으면 그만이다.
민주주의와 시민사회가 발달한 나라일수록 공권력은 권위를 인정 받는다. 프랑스를 다녀온 한 장관은 `우리 일행을 에스코트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탄 프랑스 경찰이 비켜주지 않는 시민들의 차를 구두발로 걷어 차는 데 놀랐다`고 말했다. 오토바이를 탄 경찰이 서울에서 그랬다면 당장 `폭력 경찰`로 지탄을 받았을 일이다.
권위를 인정받는 공권력의 바탕에는 신뢰가 깔려 있다. 공권력이 모두의 공익을 위해 정당하게 사용된다는 믿음이다. 뒤짚어 말하면 한국의 공권력은 선진국에 비견할 신뢰를 얻고 있지 못하다는 얘기가 된다.
또 다시 예를 들어보자. 인구는 6만8,000명인데 경찰병력이 8,000여명 들어와 있다고 생각해보자. 바로 부안이 그렇다. 미국이나 프랑스 같은 곳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아무리 거센 시위도 경찰 수백명이 동원되면 해산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부안에서는 경찰 병력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부안 사람들은 그만큼 험악할까.
그렇지 않다.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공권력은 상대를 물리적으로 제압할 만큼의 숫자가 필요할 수 밖에 없다. 정책의 정당성과 그 절차 역시 따져봐야 한다. 정부는 충분한 사전협의와 토론을 거쳤다고 하지만 이를 믿는 부안사람은 거의 없다.
문제와 답은 같은 곳에 있다. 정부정책과 공권력이 정당성과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면 부안 문제는 풀릴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쉽지는 않다. 핵폐기물 매립장 건설은 시급한데 주민들을 설득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걸리고 지금까지 투입한 예산이 아까워도 주민들의 동의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책의 정당성, 공권력의 권위는 시민의 동의과 이해를 통해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의 인식은 이와는 거리가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공권력의 권위만을 강조하거나 부안 사태의 앞날을 염려하기 보다는 `몇몇 시민단체의 선동 때문에 문제가 꼬였다`는 식의 책임전가형 사고가 엿보인다. 장관급 이상 관계자들의 발언도 엇갈려 혼동을 낳았던 것도 사실이다.
예산을 더 투입해도 부안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면 다른 대안을 찾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일의 진행과정에서 잘못이 있었다면 솔직하게 인정할 필요도 있다. 정부와 공권력의 권위는 정직과 투명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권홍우 <경제부 차장> hongw@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