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ㆍ중국ㆍ독일 등 주요국의 제조업 지표가 5월 들어 일제히 큰 폭으로 악화하면서 글로벌 경제가 또다시 둔화의 수렁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의 지난달 제조업 지수가 지난해 11월 이후 6개월 만에 처음으로 경기확장 기준선인 50을 밑돌고 비교적 선방하던 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제조업도 수축하며 위기감이 선진국에서 신흥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4월 각국 제조업 지표가 부진할 때 일각에서 제기되던 '소프트패치(경기회복시의 일시적 침체)' 가능성은 점점 힘을 잃고 있다. 반면 글로벌 경기가 올 2ㆍ4분기에 바닥을 치기는커녕 오히려 둔화하면서 경기가 다시 꺾일 수 있다는 비관론이 커지고 있다.
◇전세계 제조업 경기 수축=일단 세계 최대 경제국인 미국 제조업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3일(현지시간) 미국 공급자관리협회(ISM)가 집계한 미국의 5월 제조업 지수는 49를 기록해 6개월 만에 기준선인 50을 밑돌았다. 이는 경기침체가 정점에 달했던 2009년 6월 이후 약 4년 만에 최악의 성적이기도 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가장 중요한 제조업 지표의 부진은 전체 경기회복에 김이 빠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그동안 선방하던 아시아 국가들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3일 HSBC가 발표한 아시아 3위 경제대국 인도의 5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0.1로 50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대만 5월 PMI는 47.1까지 추락하며 6개월 만에 50을 하회했으며 전달의 50.7에서 크게 후퇴했다. 베트남 역시 지난달 기준선 이하인 48.8을 기록해 4월의 51에서 크게 떨어졌다.
상황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도 마찬가지다. 시장조사업체 마킷이 3일 발표한 유로존의 지난달 제조업 PMI는 48.3으로 22개월 연속 50을 하회했다. 특히 역내에서 홀로 승승장구하던 독일의 제조업 PMI도 49.4를 기록해 3개월 연속 50을 밑돌았다. 이밖에 주요2개국(G2) 중 하나인 중국 역시 지난달 제조업 PMI가 7개월 만에 처음으로 50을 하회한 49.2(HSBC 집계 기준)를 나타냈다.
◇막대한 돈풀기, 실물 부양에 한계=이 같은 전세계 제조업의 위축은 각국의 동시다발적 양적완화 속에서 금융시장은 호황을 맞고 있지만 그 효과가 기업ㆍ가계 등 실물경제로는 전이되지 않은 탓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주택시장과 소비심리가 개선돼 비교적 상황이 좋지만 중국은 경제전략을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수정하며 인프라 투자를 축소, 경기회복세가 지지부진하다. 유로존 역시 4월 실업률이 12.2%를 기록해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등 실물경제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은 중국 의존도가 높아 크게 휘청이고 있으며, 특히 인도에서는 고물가에 따른 내수부진에다 최악의 전력난까지 겹쳐 제조업이 위기를 맞았다. 베트남 또한 물가상승에 따른 내수감소가 제조업 지표 하락을 부추겼다.
이처럼 제조업 지표가 경고음을 보내면서 기업 실적 전망과 그동안 호황을 보이던 금융 부문도 흔들리고 있다. 3일 시장조사기관 팩트셋에 따르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기업의 1ㆍ4분기 매출이 0.2% 하락했고 민간 전문가들이 보는 S&P500 기업의 2ㆍ4분기 주당순이익(EPS) 성장률 전망치도 종전 4.4%에서 1.3%로 대폭 하향 조정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가 부동산 및 고용시장의 회복세를 근거로 그동안 풀었던 유동성을 거둬들이는 출구전략 가능성을 시사하자 호황을 맞던 금융시장도 흔들리고 있다. 뮤추얼펀드 전문 분석기관인 리퍼에 따르면 평균 만기 10년 미만의 우량 채권에 투자한 미국의 주요 뮤추얼펀드는 지난달 평균 1.8%의 손실을 기록했다. 미국의 10년물 국채금리가 1.6%에서 2.1%대로 급등한 여파다.
◇2ㆍ4분기 경기악화 전망 잇달아=4월에 이어 5월 제조업 지표가 갈수록 악화되면서 2ㆍ4분기 경제성장률이 큰 폭으로 둔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존 실비아 웰스파고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2ㆍ4분기 성장률은 1.2%로 1ㆍ4분기 2.4%의 절반에 그칠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터도 제조업 경기 둔화로 G2가 2ㆍ4분기에 성장 모멘텀을 상실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3일 유로존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독일이 수출 및 내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3%로 낮춰 잡았다. 이는 불과 두 달 전 0.6%로 책정한 것을 반토막 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