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리빙 앤 조이] 박강성, 생계수단 시작해 '미사리 서태지'로

라이브 목말라하는 세대에 어필··· 7080 문화 확산의 주역 자신감<br>비주류에서 메이저로 컴백 시도


‘미사리의 서태지’로 불리는 박강성은 미사리 지역 카페촌에서 독보적인 남성 가수이자 7080문화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8년 전 미사리에 라이브 카페가 처음 생겼을 때 메이저 가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출연하기 시작해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박강성은 출연하는 카페에 ‘아줌마’ 팬클럽이 따라다니며 빨간 형광봉을 흔들 정도로 인기가 높다. 박강성은 최근 베스트 앨범을 발표했다. 비주류 활동을 통해 서서히 쌓은 인기를 통해 다시 메이저로 컴백하려는 의도다. 박강성은 “7080은 억눌린 중년의 감성이 폭발하면서 생긴 문화”라며 “미사리가 7080문화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견해를 밝혔다. -처음 미사리에서 노래한 계기는. “삶의 방편이었다. 그런데 내가 출연하는 날마다 손님이 가득 차 스스로도 놀랐고 이후 생계 이상의 의미를 발견했다. 댄스 그룹 소방차 시절쯤부터 방송에 립싱크가 대거 도입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30~40대가 라이브 음악에 목 말라하는 시대가 온 것이었다.” -미사리에서 노래하는 것에 어떤 의미를 두나. “이곳은 나를 보여주고 내 노래를 들려주는 곳이다. 방송에서 나에게 30분짜리 독무대를 주겠는가. 미사리는 입 소문이 빠른 곳이다. 노래 잘하면 음반 30~40장이 카페에서 바로 팔려나가지만, 성의 없이 노래하는 가수는 아무리 유명해도 곧장 퇴출된다. 미사리는 노래를 듣고 싶은 사람이 찾는 곳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야 가수 대접을 받는다.” -7080문화가 갑자기 일어섰던 이유는 무엇으로 보나. “보수적인 직장과 가정 문화에 억눌렸던 중년의 마음이 한번에 터진 것으로 본다. 노래로 대리 만족을 느꼈던 거다. 20대가 음악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60, 70, 80년대 모두 똑같았다. 그때 역시도 30대 이상은 갈 곳이 없었다. 그 연령대를 흡수했던 곳이 미사리다.” -최근 7080문화가 다소 주춤한 이유는. “추억만을 무기로 대중 앞에 나선 사람들의 뒷심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미사리를 가수의 무덤이라고 부른다. 나도 연습 안하고 대충 노래했으면 이곳이 무덤으로 남았을 것이다.” -앞으로 활동 계획은. “미사리 활동을 꾸준히 한 결과, 지금은 어느 지역에 가도 환영 받는다. 지역적 편차가 없는 가수는 드문데 나는 미사리 활동을 통해 이를 극복한 경우다. 앞으로는 카페 가수 범위를 벗어나 메이저 무대에 복귀하고 싶다. 온 가족이 좋아하는 가수가 되는 것도 소망이다. 감각적인 음악을 해나갈 생각이다. 바비킴이나 드렁큰타이거 같은 젊은 음악가들에게도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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