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이단 시비 잠재우고 세계평화 화두에 한평생

■ 문선명 통일교 총재 별세<br>194개국 300만 신도 거느려<br>김일성과 남북경제교류 합의도<br>후계자엔 막내 문형진 목사

3일 별세한 문선명 통일교 총재가 생전인 1994년 모스크바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만나는 모습. /사진제공=통일교

고(故) 문선명 총재는 1920년 1월6일 평북 정주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 전기학과를 졸업한 뒤 6ㆍ25 전쟁 휴전 다음해인 1954년 통일교를 창시했다.

통일교는 1957년 일본을 시작으로 1972년 미국에 진출하는 등 해외 선교를 본격화하면서 50여년 만에 194개국 300여만명의 신도를 거느린 종교단체로 성장했다. '순결한 가정'을 기치로 내세워 1961년 36쌍을 시작으로 합동 결혼식을 치르고 있으며 1992년 8월 서울 잠실 올림픽경기장에서 열린 3만쌍 국제 합동 결혼식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하지만 통일교의 성장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고인 자신을 '메시아'로 보는 통일교의 교리 때문에 이단 시비에 휘말렸다. 고인은 일제 강점기와 광복 후 공산 치하 북한, 이승만 정권 시절, 그리고 미국 등지에서 6차례나 옥고를 치렀다. 2008년 7월에는 헬기 불시착 사고로 아찔한 순간을 맞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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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평화'라는 화두에 일생을 바친 고인은 1991년 12월 북한 김일성 주석을 만나 남북 정상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개발을 비롯한 남북 경제교류에 합의했다. 2005년 천주평화연합을 창립한 데 이어 2010년 평화기구로 '부모 유엔'을 창설했다. 고인은 2009년 펴낸 회고록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에서 "평화 세계를 이루기 위해 나는 평생 세상의 낮고 구석진 곳을 찾아다녔다"고 밝히기도 했다. 고인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매달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직접 선교를 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일교 내부에서는 이미 후계구도가 갖춰진 만큼 문 총재의 유고에도 불구하고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통일교는 2008년 4월 7남6녀 중 유일하게 목회자의 길을 걷는 막내아들 문형진(33) 목사를 통일교 세계회장으로 임명해 사실상 문 총재 이후의 후계구도를 갖췄다. 문 목사는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하버드대 철학과와 신학대학원에서 비교종교학을 전공한 뒤 2007년부터 통일교의 상징적 교회이자 고인이 목회했던 서울 용산구 청파교회 당회장으로 취임해 사실상의 후계자 역할을 해왔다.

통일교 총재직은 생전 고인의 언급에 따라 당분간 부인 한학자씨가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4남 문국진(42)씨는 통일교재단 이사장 겸 통일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정승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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