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부자로 죽는 부끄러움

부자로 죽는 부끄러움 한국에서 온 친지들을 위해 관광·쇼핑 안내를 하다보면 자존심이 상할 때가 있다. “한국에도 이런 거 다 있어. 미국 별거 아니네” 빠듯한 근무시간 조정하고, 아까운 휴가 내서 손님대접을 하고 나니 “돌아오는 게 이런 반응이더라”며 맥 빠져 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본다. 위락시설이나 물건으로 한국사람들을 감탄시킬 때는 지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의 친지들이 미국에 와서 여전히 감탄하며 부러워하는 것이 있다. 동네마다 자리잡은 깔끔한 도서관, 드넓은 초록의 공원등 공공 문화시설들이다. 나의 경우, 미국에 처음 와서 가장 감명을 받은 것은 미술관이었다. 20년전 피츠버그의 카네기 미술관에 갔는 데 한국에서는 미술책에서나 보던 화가들의 그림이 버젓이 벽에 걸려있는 것이었다. “워싱턴이나 뉴욕도 아니고 지방 소도시의 미술관에 세계적 화가들의 작품이 있다니, 미국은 정말 대단한 나라로구나”감탄을 했었다. 나의 이런 감탄을 거슬러 올라가면 정확히 100년전의 한 사건에 다다른다. 1901년 2월 어느날, 뉴욕의 한 호텔에는 당대의 두 부호가 마주 앉았다. US스틸을 설립한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와 금융왕 존 P. 모건이었다. 용건은 카네기의 철강회사 매매. 모건은 이날 4억9,200만달러라는 거액을 지불하고 카네기로부터 철강회사를 매입했다. 당시 일본의 연예산이 1억3,000만달러였다고 하니 얼마나 엄청난 액수였는지 상상이 된다. 이후 카네기는 191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돈 버는 일을 하지 않았다. 돈 쓰는 일만했다. 공공 도서관건립 지원재단을 만들어 미전국에 2,800여 도서관을 세우고, 카네기 회관, 카네기 공과대학, 카네기 교육진흥재단등 학문과 예술 발전을 돕는 일에 그 많은 돈을 다 썼다. 그리고는 “부자인채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는 말을 남기고 당당하게 죽었다. 자연계를 통털어 배가 부른데도 계속 먹이를 욕심내는 동물은 인간뿐이라고 한다. 인간의 사촌쯤 되는 ‘욕심쟁이’로 꼽히는 것이 꿀벌이다. “벌들은 제 배가 차도 계속 꿀을 모으지만 욕심내고 꿀을 모아봤자 결국은 곰이나 사람에게 빼앗기고 만다”는 것이 인디언들의 가르침이다. 그러니 필요한 것 이상은 욕심내지 말라는 교훈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능력껏 꿀을 잔뜩 모으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사회이다. 어떤 사람은 평생 벌어야 되는 돈을 어떤 사람은 하루에도 벌수있는 이상한 나라가 자본주의 국가이다. 그 구조적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오늘의 미국이 된것은 가진 자들의 나누는 정신 덕분이라고 본다. 부의 사회환원 정신이 피가 되어 미국이라는 몸 구석구석에 양분을 주고 있다. 이번주 미국 부자들의 상속세 폐지 반대운동은 그런 의미에서 신선하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인 윌리엄 게이츠 시니어 주도하에 미국의 내노라하는 부호들이 ‘상속세 없애지 말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제살깍아내기 운동인데 카네기가 말하는 부자의 후반부 인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카네기는 부자의 인생은 모름지기 두 시기로 나뉘어져야 한다고 했다. 부를 획득하는 전반부와 부를 분배하는 후반부. 꿀을 잔뜩 모았으면 나누어 주는 일로 끝을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시행정부가 내놓은 상속세 폐지안과 상관도 없다. 현재 67만5,000달러, 2006년부터는 100만달러까지 세금이 없고 그 이상이라야 상속세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해도 미국의 부자들이 왜 상속세를 내려고 하는지, 유산으로 다 물려주지 않고 자선단체들에 기부를 하는 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부자로서 사회에 대한 책무 의식도 있겠지만 너무 많은 유산은 오히려 후손들에게 해가 될 수있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있다고 본다. 유산상속 때문에 집안이 갈라지고 후손들의 앞날이 오히려 망쳐지는 경우들을 심심찮게 본다. 정신적 유산없이 물질적 유산만 남겨질 때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유럽과 소아시아를 지배했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죽으면서 “장례식때 내 두팔을 관 밖으로 내놓으라”고 지시했다는 전설이 있다. 천하의 권력과 재물을 움켜쥐었던 그도 빈손으로 떠나간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나는 자손들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생각해보아야 하겠다. 권정희<미주한국일보 편집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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