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역사의 향기] <26> 봉천동 강감찬 생가터


지금의 서울 지역이 고려시대에 중요시 여겨진 것은 이 지역 출신들이 국가와 왕조에 지대한 공을 세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려는 태조 왕건을 포함한 각 지역 호족들의 연합정권이라는 성격이 강했다. 때문에 대호족이 있는 지방은 자연스럽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대표적인 경우가 강감찬(948~1031) 집안이다. 이야기는 그의 5세조인 강여청이 신라 경주 지역에서 금주(지금의 관악구와 시흥시)로 이주하면서 시작됐다. 그의 가문은 이후 호족으로 성장했으며 강감찬의 부친인 강궁진 때에는 왕건의 고려 창업과 후삼국 통일에 적극 협력, 그 공로로 삼한벽상공신의 칭호까지 받았다. 강감찬은 지금의 관악구 봉천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창업공신이라면 강감찬은 구국의 영웅이다. 북방의 최대 위협이었던 거란의 대군을 1019년 귀주대첩으로 격파하면서 나라를 구했다. 훗날 사람들이 강감찬의 공을 기려 생가 터에 삼층석탑을 세웠다. 이 석탑은 1974년 생가 터에서 남쪽으로 500m 떨어진 낙성대공원 내의 강감찬을 기리는 사당 '안국사'로 이전됐다. 그리고 생가 터에는 사진처럼 유허비가 남았다.

관련기사



최수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