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로에 선 외환관리] <10·끝> '포스트 달러'에 대비하라

'저무는 달러시대'… 외환정책 틀 바꿔야<br>기축통화 위상 한순간 붕괴않겠지만 弱달러는 대세<br>'1,000원 방어' 임기웅변식 대처 계속땐 실탄만 소진<br>정부정책 패러다임 대전환… "煥주권 회복 나서야"

[기로에 선 외환관리] '포스트 달러'에 대비하라 '저무는 달러시대'… 외환정책 틀 바꿔야기축통화 위상 한순간 붕괴않겠지만 弱달러는 대세'1,000원 방어' 임기웅변식 대처 계속땐 실탄만 소진정부정책 패러다임 대전환… "煥주권 회복 나서야" • [기로에 선 외환관리] 유로화가 대안? 지난 2005년 3월3일 미국 하원 예산위원회 청문회. ‘국제 금융시장의 황제’인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이마에 식은 땀이 흘렀다. 존 스프래트 민주당 의원은 “외국인들이 달러화를 포기하고 다른 통화로 옮겨갈 수 있다”며 증인으로 출석한 그린스펀 의장을 다그쳤다. “미 달러화 이탈 등의 루머가 있지만 진행형이라는 증거는 없다”며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그린스펀 의장의 미간에는 곤혹스러움이 가득했다. 국제자본의 미국 이탈 가능성에 대한 공세가 계속되자 그린스펀 의장이 할 수 있던 것은 “그럴 수도 있지만 국내 저축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이라며 화제를 슬며시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뿐이었다. ‘달러’는 영원한가. 지금 국제금융시장의 화두는 쇠락하는 달러의 위상이다. ‘통화다변화’라는 한국은행(BOK)의 보고서가 쇼크를 촉발했다고 하지만 달러의 위기가 시작된 지는 실상 오래 전이다. 일본과 중국ㆍ인도가 최근에야 통화다변화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그들의 외화곳간은 이미 다른 물건들로 차곡차곡 채워지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의 외화자산 포트폴리오 재편성, 그들의 행동은 달러화의 미래와 국제시장에 움트는 도도한 흐름의 변화를 보여주는 시발점이다. 그들에게 달러화는 더 이상 ‘성역(聖域)’이 아니다. 그린스펀 의장의 ‘식은 땀’은 미국 정치권과 월가를 중심으로 고조되고 있는 ‘선셋(sunset) 달러’의 상징물이다. 전세계 외환보유액(2004년 말 현재 3조8,000억달러)의 70%를 소유한 아시아. 그들에게 쇠락하는 달러화는 국가의 명운을 걸 만큼의 거대한 변화를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그들이 달러화를 버리고 유로화를 택하는 순간 달러화의 쇠락 속도(가치)는 무섭게 빨라질 것이다. 미국 국채수익률 급상승과 미국경제의 쇠퇴, 그리고 부메랑이 돼 돌아올 세계경제의 침체, 그들은 누구보다 달러화의 몰락이 가져올 악순환의 고리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대세는 피할 수 없다. 미국은 그들의 국채를 사들이며 무역수지를 메워주던 아시아의 ‘VIP’ 고객을 떠나 보낼 수밖에 없다.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글로벌 달러화 약세는 단순히 기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70년대 이후 유지돼온 ‘제2의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를 암시한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학(NYU) 스턴스쿨 교수는 “현 시스템이 지속될 경우 달러가치 하락이 심화되면서 미국 자산가치가 떨어지고 (세계경제가) 급격한 경기둔화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세계의 생산공장 중국이 위앤화를 어느날 절상한다면. 국내의 정통한 외환 당국자는 “중국발(發) 대공황 가능성을 무시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불행하게도 정작 한국 내에서는 ‘포스트 달러’에 대한 우려는 그리 높아보이지 않는다. 달러화의 본토인 미국보다 오히려 여유롭다. 미국의 수출로 먹고사는 아시아 국가들이 손실을 피하기 위해 달러 매각에 나설 경우 달러가치 약세만 더욱 부추길 것이라는 초등학교 산수공식에만 의존하는 느낌이다. 달러화를 대체할 마땅한 국제통화가 없는 상황에서 아시아 국가들이 달러를 동시에 내다파는 ‘밴드왜건(Band Wagon)’ 효과는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강순삼 한국은행 국제기획팀 차장은 “미국의 쌍둥이 적자 등 구조적인 문제가 더욱 심화돼 다른 국가들이 달러화 자산을 매각하는 사태가 단시일 내 이뤄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말했다. 물론 미국이 석유ㆍ식량ㆍ우주사업 등 3개의 열쇠를 쥐고 있는 한 수십 년 지켜온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 위치가 순식간에 붕괴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선셋 달러’는 역류할 수 없는 대세다. 외환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은 절체절명의 명제다. 단순히 ‘달러당 1,000원’을 막기 위한 임기응변식 대처는 어느 순간 우리의 외환능력을 태양빛에 녹아 내리는 밀랍인형처럼 만들 것이다. 외환시장에 정통한 한 고위관료는 현재의 외환개입 양태를 “거래소시장에서 주식이 오를 때는 이미 오를 요인이 다 반영된 것인데 현재의 주가를 보고 주식을 사는 것처럼 우매한 행동”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당장의 수급에 얽매여 필요 없는 실탄만 소진하는 행태가 되풀이 되고 있다”며 “재경부와 한국은행 모두에 책임이 있다”고 자인했다. ‘BOK 쇼크’는 이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지금 BOK 쇼크보다 몇 배 이상의 큰 강도로 또 다른 쇼크가 밀려오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포스트 달러’와 이를 매개로 한 통화전쟁, 이 속에서 환(換)주권을 언제 어떻게 회복하느냐는 우리 정부와 시장 참여자들의 책임이자 의무다. 특별취재팀=김영기 기자 young@sed.co.kr 김민열 기자 mykim@sed.co.kr 현상경 기자 hsk@sed.co.kr 입력시간 : 2005-03-17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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