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11월 26일] 자금세탁방지제와 금융법치

누구나 한 번쯤은 주머니에 돈이 있는 채로 세탁기를 돌렸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금세탁'이라고 하면 세탁기에 돈을 넣고 돌리는 것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자금세탁(Money Laundering)이라는 용어가 지난 1920년대 미국 마피아가 도박이나 불법주류판매대금을 현금거래가 많은 세탁소를 통해 합법적인 수익으로 가장했다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본다면 전혀 무관한 것도 아닐 성싶다. 차명거래 통한 불법해위 만연 보험사기ㆍ환치기ㆍ보이스피싱은 자금세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금융범죄들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벌어지고 있다. 자금세탁이란 금융거래 등을 통해 범죄수익을 숨기거나 합법적인 것으로 가장(假裝)하는 행위를 말한다. 자금세탁방지제도를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는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고객의 신원과 연락처를 확인하도록 하고 자금세탁으로 의심되는 거래는 당국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나아가 미국ㆍ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금융기관에 금융거래의 목적과 실소유자까지도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1년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설립과 함께 자금세탁방지제도를 도입했다. 1990년대 초부터 관련 제도를 도입한 선진국에 비해 비교적 출발은 늦었지만 금융기관 및 법 집행기관의 적극적인 참여와 국민들의 협조로 자금세탁방지제도가 빠르게 정착됐고 2009년 10월에는 자금세탁방지국제기구(FATF)의 정회원으로 가입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이는 우리나라가 자금세탁방지에 관한 국제적 논의에서 규범설정자(rule setter) 역할과 함께 신흥국에 선진자금세탁방지제도를 전수할 수 있는 가교자 역할을 할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얼마 전 주요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계기로 자금세탁방지국제회의 및 워크숍에서 우리나라의 적극적인 기여를 기대하는 목소리를 자주 듣게 돼 무거운 책임감과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국내적으로는 아직 자금세탁방지 분야는 다른 금융 분야에 비해 여전히 관심이 낮은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일부 금융기관은 자금세탁방지제도가 비용만 증가시키는 번거로운 일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글로벌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자금세탁방지제도를 갖추지 못한 국가의 금융기관들은 해외영업 또는 금융거래가 제한되거나 추가자료 제출을 요청 받는 등 직간접적 불이익을 받게 된다. 따라서 글로벌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제도 도입과 아울러 이를 금융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아울러 얼마 전까지도 보험사기ㆍ환치기ㆍ보이스피싱과 같이 금융시스템을 이용한 자금세탁행위가 꾸준히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일부 금융회사와 대기업이 조직적인 차명거래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사건들이 사회문제화 돼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고 있다. 이와 같이 차명거래는 범죄에 악용되는 등 많은 부작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ㆍ친족 간에 선의로 이뤄지는 차명거래도 있어 이를 현실적으로 완전히 금지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금융권·국민들 모두 막아야 자금세탁방지제도는 이러한 차명거래를 통한 불법행위를 방지하는 효율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차명거래는 범죄수익을 은닉ㆍ가장하는 자금세탁의 전형적인 사례로써 이러한 자금세탁행위는 고객확인 및 혐의거래 보고를 통해 효율적으로 규율될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금융기관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노력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국민들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짧은 제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수준의 자금세탁방지제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금융투명성과 신뢰성을 제고할 뿐만 아니라 국가경쟁력도 향상시킬 것이다. 은행ㆍ증권ㆍ보험 등에서의 불법거래를 차단하기 위한 '금융법치(金融法治)'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 금융정보분석원은 더욱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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