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부의 ‘반쪽짜리’ 생명공학 육성책

정부의 생명공학산업 육성책이 기초기술 및 신물질 등 연구개발 지원에 치우쳐 임상시험ㆍ시판허가 등 상업화 단계에서 병목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이 하루 속히 시정되지 않으면 오는 2010년 반도체시장 수준인 1,540억 달러 규모로 성장이 예상되는 세계 생명공학 시장에서 국제경쟁력을 상실할 것으로 우려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이 같은 위기의식에 따라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BT(바이오기술) 의약품ㆍ의료기기 등의 임상시험ㆍ시판허가에 필요한 가이드라인과 안전성ㆍ유효성 평가기준 등을 연구할 생명공학지원연구부 신설을 추진중이다. 그 필요성을 점검하고 업계의 바람을 정리해 본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진단용 DNA칩이나 암 등 난치병의 고통에서 인류를 구원해줄 세포ㆍ유전자치료제를 개발한 바이오 벤처기업이나 연구자들이 상품화에 애를 먹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전임상ㆍ임상시험 등 제품화 경험이 없고 허가당국인 식약청은 전문인력 부족으로 임상시험 허가에 필요한 안전성ㆍ유효성 평가기준 등을 뒤늦게 만드느라 허둥대고 있다. 연구개발 속도가 워낙 빠르고 BT(바이오기술)ㆍNT(나노기술)ㆍIT(정보기술) 등이 융합된 DNA칩ㆍ단백질칩ㆍ랩온어칩ㆍ나노바이오센서 등 신개념 의약품ㆍ의료기기가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다. 식약청의 가이드라인이 뒤늦게 만들어지면 생명공학 의약품을 개발한 바이오벤처 등은 임상시험 허가를 받기 위해 확보해야 할 안전성ㆍ유효성 입증자료 확보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적잖은 시간ㆍ비용을 들여 각종 시험자료를 챙겼더라도 나중에 만들어진 가이드라인에서 요구하는 자료가 빠졌다면 처음부터 동물실험 등을 다시 진행해야 한다. 가뜩이나 자금난에 시달리는 바이오벤처 등에겐 엄청난 부담이다. 돈벌이 안되는 연구개발 투자의지가 사그러들고 업계의 국제경쟁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식약청 관계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만들지 않은 새 안전성평가기준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미국에서 기준이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리면 우리나라는 카피제품만 생산하는 이류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며 “생명공학 의약품의 갭라속도에 맞춰 적합한 평가기준을 만들어 업체의 부담을 줄이고 임상 단계의 시행착오를 줄여줘야 우리나라도 생명공학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내 생명공학지원부 신설 추진=생명공학산업을 육성ㆍ지원하기 위해 만든 정부 내 각종 위원회에 인ㆍ허가 부서인 식약청이 배제된 점도 연구개발~제품화에 이르기까지 효율적인 지원을 어렵게 하고 있다. 식약청 등이 업계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56.6%가 허가ㆍ심사규정 및 절차의 어려움, 제품화에 필요한 시험자료 부족이 최대 애로사항으로 꼽혔으며 연구개발인력 부족이 31.0%로 그 뒤를 이었다. 식약청은 이에 따라 생명공학 제품의 안전성ㆍ유효성 평가기준 등을 만들고 업체들에 대한 사전상담을 내실화하기 위해 100명 규모의 생명공학지원연구소 신설을 중장기 과제로 추진한다는 청사진 아래 1차로 4개과(35명) 규모의 생명공학지원부 신설을 허용해줄 것을 행정자치부에 요청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지난 9일 특허청의 심사인력과 식약청의 안전성평가 관련 인력증원을 약속했다. BT 선진국들은 이미 지난 2002년 미국이 FDA 생물의약품평가연구센터 내 세포ㆍ유전자치료제부를 세포ㆍ조직ㆍ유전자치료제실(3부5과4연구실)로 확대개편하고 일본이 국립의약품식품위생연구소에 세포ㆍ유전자치료제부(3과)를 신설하는 등 한발 앞서가고 있다. 식약청 관계자는 “BT 연구성과의 산업화 성공 여부는 기초과학, 기술실용화, 안전성평가 분야 전반에 걸친 종합적 경쟁력에 좌우된다”며 “기초과학 등 분야는 선진국 수준의 70~80% 이상이지만 제품화에 필수적인 안전성평가기술이 30% 수준인 현 상황을 개선하지 않고는 BT산업의 경쟁력 향상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마무리투수진` 강화해야=생명공학 연구개발 투자비의 일정 비율(예 5%)을 안전성ㆍ유효성 평가를 위한 가이드라인 작성 연구비로 배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한병현 박사는 “우리나라 BT 지원은 선발투수진(기초과학 기반 강화)에는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지만 중간계투(기술중개), 마무리투수진(품목허가기준 등 마련) 등 연구개발 결과의 상업화 분야에 대한 지원은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1994년 마련된 생명공학육성기본계획 3단계 기간(2002~2007년)의 정부예산은 5조1,620억원 규모. 지난해의 경우 5,393억원이 BT에 투자됐지만 대부분이 기초과학, 기반기술 연구개발에 지원됐다. 반면, 보건산업진흥원 기술이전센터의 예산은 4억원, 식약청의 예산은 78억원에 불과했다. 한편, 업계에선 식약청의 움직임을 환영하면서 사전상담제, 민원후견인제도 등의 내실화에도 보탬이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바이오벤처 사장은 “식약청 의약품안전국, 안전성평가관실, 독성연구원 담당자간에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상담ㆍ평가담당자가 달라 책임있는 사전상담이 이뤄지지 않는 문제점도 개선해야 한다. 사전상담 결과를 상세히 기록하고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는 의약품안전국 생물의약품과의 인원보충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평가담당자를 1명만 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담당자가 해외출장을 가거나 인사이동, 국정감사 등으로 몇 달씩 평가기간이 지연되는 경우가 적잖다”며 “평가담당자를 복수로 배정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 평가의 객관성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임웅재기자 jael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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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웅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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