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사후피임약 논란속 시판 임박

"사실상 조기낙태" 반대에 "건강보호차원 도입" 대세응급(사후)피임약 '노레보'의 도입여부를 둘러싸고 각급 사회단체 사이에 팽팽한 찬반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원장 정경배)이 공청회를 통해 찬성을 암시하는 의견을 내놓아 국내시판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 응급피임약 시판여부를 둘러싸고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생명경시 우려와 여성의 건강, 경제적인 파급효과 등이다. 전문가들은 응급 피임약이 국내에 시판될 경우 연100억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80만건의 낙태수술을 고려할 경우 2,400억원의 비용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여론수렴 과정을 통해 허가여부를 결정할 방침. 공청회에서 제기된 내용 등을 충분히 검토, 중앙약사심의위원회를 열어 허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도 시민ㆍ종교단체는 물론 일부 의료계조차 반대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데다 처방약품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일반의약품으로 할 것인지 이익 단체간 논란이 많아 결정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레보의 효능과 시판을 둘러싸고 가열되고 있는 논쟁의 핵심을 알아 본다. ◇ 어떤 약인가 프랑스 'HRA Pharma'제약사가 개발한 알약. 2정이 1세트로 돼 있다. 성 관계 직후 1알을 먹고 72시간 내에 1정을 또 복용해야 한다. 수입사는 현대약품으로 올 5월 식품의약품안전청에 허가신청을 냈다. 이와는 별도로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에서 98년 11월~올 9월까지 871명을 대상으로 시범적으로 응급피임약을 제공한 결과 8명이 피임에 실패했으며 11명이 가려움증ㆍ자궁출혈 등 부작용이 나타났다. ◇ 반대입장 수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정자와 난자의 수정을 방해하는 일반 피임약과는 달리 노레보는 성 관계 후 수정란의 자궁내막 착상을 방지하기 때문에 조기낙태나 다름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사후 피임으로 갖추어야 할 조건이 제대로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다. 인하대의대 홍재웅 교수는 "연구결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노레보의 피임성공률은 75%가 정설"이라면서 "전체적으로 보면 효과가 적지 않아 보이지만 개인적 입장에서 25%의 실패 가능성은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 '실패자'에게는 해결방법이 낙태일 수 밖에 없어 이중부담을 준다고 반대하고 있다. 피임에 실패한 후 출산을 할 경우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우려도 적지않다. 완벽한 피임이 아니라 응급조치라는 점에서 사회문제를 다소 경감할 수는 있어도 근절하지는 못하는 한계가 있다는 것. 부작용이나 피임에 실패할 경우에 대비해 세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성윤리 문란과 여성 건강저하도 우려되는 문제다. 한국누가회 박재현 간사는 "응급피임약이 시판되면 생명경시 풍조는 물론, 불건전한 성문화를 조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찬성입장 약이 수입될 경우 성 문란을 조장하고 생명경시 풍조가 확산될 우려가 있으며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이유가 사후피임약 도입거부로 이어질 수는 없다고 일축한다. 한국여성개발원 송다영 연구위원은 "국내의 경우 연간 낙태자가 150만명이 넘는 사회분위기와 키울 수 없는 아이를 낳아 버리거나 미혼모로 인생의 날개를 접어야 하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현실적으로 안전하게 낙태를 받을 수 없어 불법 시술을 받은 후 감염ㆍ출혈ㆍ자궁천공 등을 호소하는 여성이 많다는 점에서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다른 방법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낙태밖에 없다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성 문란이나 도덕적 측면보다 여성이나 청소년들의 건강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피임약에 접근하고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둘 일이다. WHO(세계보건기구)는 여성의 인권보호 차원에서 생식보건권 중 피임정보 접근권리를 주도록 권하고, 영국ㆍ덴마크ㆍ스웨덴은 물론, 전통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도 사후 피임약을 허용하고 있다. ◇ 남은 숙제 첨예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응급피임약 도입은 불가피한 대세다. 응급피임약의 도입은 낙태를 원하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의사의 손이 필요하지 않게 됐음을 의미한다. 이제 남은 문제는 도입 시 전문의약품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일반의약품으로 할 것인지 시판 시기를 결정하는 것이다. 시민단체나 의료계 일부에서는 실효성 여부를 내세워 일반의약품을 주장하고 있지만 현재의 분위기를 감안할 때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 11월 중 판매될 것이 유력하지만 보다 신중한 여론수렴 과정을 거칠 경우 내년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상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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