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3월 24일] <1652> 로메로 대주교 피살


1980년 3월24일 밤, 산살바도르. 성찬미사가 집행되던 '신의 섭리' 병원 부속예배당에 난입한 괴한 4명이 M-16자동소총을 갈겨댔다. 성배를 들려던 순간 총탄을 맞은 로메로 대주교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국민의 90% 이상이 가톨릭을 신봉하는 엘살바도르 교회의 최고지도자 로메로 대주교를 도대체 누가 죽였을까. 권력의 사주를 받은 극우파, 미국 특수전 사령부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예비역 장교들의 소행으로 훗날 밝혀졌다. 로메로 대주교는 온건성향의 학자 스타일이었으나 대주교에 오른 뒤 몇몇 지주 가문과 결탁한 군사정권이 국민을 탄압하는 현실에 적극적 민권운동에 나섰던 인물. 1979년 노벨평화상 후보로도 거론됐던 그는 군사정권의 '눈엣가시'였다. 암살 당하기 하루 전에는 병사들에게 '신의 뜻을 받들어 인간의 기본권을 말살하는 정부의 진압명령을 거부하라'고 강론해 군부의 분노를 자아냈다. 로메로 대주교의 죽음을 애도하는 인파 25만명이 몰린 장례식에서도 폭탄이 터져 40여명이 죽거나 다쳤다. 내전은 1992년에야 가까스로 멈춰 정치적 안정을 찾아가고 있으나 로메로 대주교 암살 30주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엘살바도르는 여전히 혼미하다. 한때 중미 최대의 공업국이라는 지위도 오래 전에 잃었다. 미국 달러화를 통화로 삼는 파격적인 조치에도 경제는 살아날 줄 모른다. 경제불안의 원인에 대해서도 목소리가 엇갈린다. 좌파는 독재와 독점의 후유증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우파는 사회불안 탓으로 돌린다. 권력과 종교가 부딪치고 정치권에서는 상대방에게만 책임을 묻는 행태가 남의 일 같지 않다. 특정 교단이 정부의 핵심사업에 반대하고 권력의 종교에 대한 간섭 논란도 한창이다. 권력과 종교의 야합이나 극단적 대치는 위험하다. 나라와 경제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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