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우리 정부는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았다. 재정여건이 탄탄해 2009년 1ㆍ4분기에만도 재정의 43.9%인 108조8,000억원을 편성했고 추가경정예산도 28조4,000억원이나 쏟아 부었다.
금리와 환율 카드도 병행했다. 수출을 늘리기 위해 고환율 정책도 폈다.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과 환율ㆍ통화정책을 총동원한 결과 2009년 경제성장률은 0.3%를 달성했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마이너스 성장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하면 양호한 성적표였다.
그렇게 넘어가나 싶던 위기가 다시 엄습하면서 정부는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2011년 성장률은 당초 전망보다 낮은 3.6%에 그쳤다. 민간소비부터 투자ㆍ수출 등 거시지표가 악화된 게 크게 작용했다. 올 1ㆍ4분기에는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까지 나온다. 1월 경상수지는 2년 만에 적자를 기록할 게 유력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6일 발표한 2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91.0로 4개월 연속 기준치 100을 밑돌았다. 물가가 상승하는 가운데 성장률이 내려가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2009년과 달리 마땅한 경기부양 카드가 없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재정상황이 녹록지 않다. 무리하게 예산을 끌어 쓰면 재정적자폭이 예상보다 커져 대외신인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준금리도 3.25%이어서 더 낮추기 힘들다.
결국 정부가 꺼내 들 수 있는 경기대응책은 비(非)재정적 수단, 즉 금융완화나 시장규제 철폐 등과 같은 방법에 국한돼 있다. 또 건설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총부채상환비율(DTI)이나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완화도 가능하지만 쉽지 않다. 신창목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기준금리를 인하하거나 LTVㆍDTI를 완화하면 경기둔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부작용이 수반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민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기업들의 설비ㆍ투자 의욕이 더욱 감소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투자를 늘릴 수 있도록 규제완화, 지원대책의 효율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