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희는 27일(한국시간) 카리브해 바하마의 파라다이스 아일랜드 오션 클럽GC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퓨어 실크-바하마 클래식에서 우승했다. 지난 2010년 LPGA 투어에 진출해 3년 만에 수확한 첫 승. 이번 대회 전까지 톱10 네 차례가 전부였던 이일희는 우승 상금 19만5,000달러(약 2억1,600만원)를 벌었다. 이 대회 이전까지 누적 상금이 59만달러였으니 '한 방'에 누적 상금의 3분의1 이상을 챙긴 셈이다.
신지애(25ㆍ미래에셋)가 1승, 박인비(25ㆍKB금융그룹)가 3승을 거두고 이일희가 1승을 보탠 '코리안 시스터스'는 올 시즌 벌써 5승을 쌓았다. 한 시즌 최다승인 12승(2009년) 경신 전망을 밝힌 것이다.
선두에 3타 뒤진 공동 5위로 출발한 이일희는 12개 홀에서 치러진 최종 3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 5개로 5타를 줄였다. 최종 합계는 11언더파 126타로 재미동포 아이린 조(29)를 두 타 차로 앞선 우승. 두 번째 홀 칩인 버디를 포함, 첫 세 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아 공동 선두로 올라선 이일희는 단독 선두로 맞은 11번째 홀(파4)에서 2온에 실패해 위기를 맞는 듯했지만 부담스러운 파 퍼트를 집어넣으면서 우승을 예약했다.
이번 대회는 강풍과 폭우로 하루 12홀씩 36홀짜리 '미니 대회'로 치러졌다. 세계랭킹 1위 박인비는 4오버파 공동 107위에 머물렀고 공동 3위로 출발한 지은희(27ㆍ한화)는 7타를 잃어 이븐파 공동 61위로 마쳤다.
이일희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도 우승이 없었다. 2007년 데뷔했지만 이듬해와 2009년 준우승을 한 차례씩 했을 뿐이다. 2009년을 상금랭킹 33위로 마친 이일희는 미국으로 눈을 돌렸다. 국내에서 1승도 없는 이일희의 도전은 무모해 보였지만 그는 퀄리파잉(Q)스쿨에서 연장 끝에 20위로 턱걸이하며 당당히 최고 무대에 입성했다. 이일희는 당시 "우물 안 개구리는 싫었다.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아빠의 말씀을 따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폰서도 없는 LPGA 투어 생활은 만만찮은 수준을 넘어 비참했다. 이일희는 진출 초반엔 동갑 '절친'인 신지애에게 신세를 졌다. 2010년 스테이트팜 클래식 땐 통장 잔액이 떨어진 탓에 카드 사용이 중지돼 하루 10달러씩을 은행에 물면서 겨우 숙박을 해결할 정도였다. 어쩔 땐 이마저도 어려워 대회 조직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대회장 근처 일반 가정에서 묵어야 했다. 이런 식으로 숙박을 해결하는 한국 선수는 이일희밖에 없었다. 이일희는 27일 "당시 숙소에서 '이렇게 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도 했다"고 돌아봤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국내 복귀. 이일희는 2011년 11월 KLPGA 투어 시드전에 나갔다. 예선은 2위로 통과했지만 본선에선 2라운드를 81타로 망치는 등 70위로 떨어졌다. 시드전 통과 커트라인은 보통 최소 50위권이다. 절망만 안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마침 볼빅이 메인 스폰서로 나서면서 생활이 안정됐고 운동 외의 걱정에서 자유로워지자 골프가 잘됐다. 지난해 7월 메이저 대회인 US 여자오픈 공동 4위로 감을 잡은 이일희는 이달 초 킹스밀 챔피언십 공동 3위에 오르며 첫 승을 예고했다.